오늘의 성인(7월11일)

2014. 7. 10. 오후 5:03:03

글자

♡7월 11일 오늘의 성인♡
===============


성 드로스탄(Drostan)

축일 7월 11일 

성 드로스탄은 아일랜드의 궁중 혈통을 지녔던
사람인데, 성 콜룸바(Columba)의 지도하에
수도생활을 하였다. 애버딘셔(Aberdeenshire)의
디어에 수도원을 세웠을 때 그가 첫 번째 원장이
되었다. 또한 그는 안구스의 글리네스크로 가서
은수자로 생활하였다.
그의 성덕과 인품은 주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서거 후 유해는 아버둘의 경당에 모셔졌고,
오늘날도 이 지역 사람들은 그의 축일을 성대하게
경축한다.


================================


성 마르치아노(Marcian)

축일 7월 11일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또는 마르치아노)는
고대 소아시아 중남부 지방인 리카오니아(Lycaonia)의
이코니움(Iconium)에서 순교한 청년이다.
그가 순교 중에 보여준 용기에 대한 증언이 전해온다.


================================


성 베네딕토(Benedict)

축일 7월 11일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투스
(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누르시아(Nursia)에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로마(Rome)에서 수학하였으나 도시생활의
혼란과 방종이 그로 하여금 광야로 가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500년경에 그는 그곳에서 30마일 떨어진
엔피데로 갔다가 은수자의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수비아코(Subiaco)에 정착하였다.

여기서 그는 3년 동안을 동굴에서 살았는데,
로마누스(Romanus)라는 은수자에 의하여 음식을
공급받았다. 독수자가 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덕과 엄격함이 널리 알려져서,
그는 비코바로(Vicovaro)에 있는 한 수도자의
공동체로부터 그들의 원장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하였으나, 그들이 그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하여 마침내 그를 독살하려고 시도하자
수비아코로 되돌아왔다.
그 후 곧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원장의 지도하에 있는 12개의
수도원을 조직하고 일과표의 일부로서 노동을
실시하였다. 수비아코는 영성과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인근의 사제이던 플로렌티우스가 자신의 활동을
트집 잡자, 갑자기 그곳을 떠나 525년경에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폴로에게 헌정된 이방인 신전을 파괴하고
인근의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며,
530년경에는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수없이 퍼져나가 또다시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다.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도 올바른 금욕생활, 기도, 공부
그리고 일 및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저 유명한 규칙을 썼다.
이 규칙은 순종과 정주 그리고 신심을 강조하였으며,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수도자들을 지도하면서도 통치자와
교황의 고문을 담당하였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도틸라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롬바르디아(Lombardia)를
재건하는데 정열을 쏟았다.

그는 547년경 3월 21일 몬테카시노에서 운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성 베네딕투스는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유럽 전체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그의 문장은 깨어진 컵, 까마귀, 종, 아바스 문장
그리고 숲이다.
 
---------------------------------------------------

현대 전기 문학이 서구의 수도원 제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에 대해서 서술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베네딕토에 대한 이야기는 성그레고리오의
'대화집'에 나오지만 그것은 그의 일생이 갖는
기적적인 요소를 설명하기 위한 윤곽일 뿐이다.

그는 중부 이탈리아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공부했으며, 일찍이 수도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 그는 타락한 세상을 떠나 은수자가 되었다.
행진하는 이교도 군대들,분열된 교리,사람들은
전쟁으로 고통받고,도덕은 타락했던 것이다.

그는 대도시보다도 조그마한 마을에 숨어 사는 생활에
휠씬 만족했으나 더 이상 거기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3년 동안 산꼭대기에 있는 동굴속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몇 명의 수사들이 얼마동안 그를 지도자로
모셨으나, 그의 엄격함이 자신들의 생활 양식과는
맞지 않음을 알았다. 베네딕토는 자기의 생활을
지금까지의 은둔 생활에서 공동 생활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는 수사들에게 일치,형제애,계속되는 전례 생활을 통한
은혜등을 주기 위해 하나의 '대수도원'에 여러단체의
수사들을 모으기로 했다. 마침내 그는 3개의 좁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원 중의 하나가 된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 규칙을 썼다. 점차로 발전된 규칙은 전례를 통한
기도 생활,공부,육체 노동 그리고 한 사람의 대수도원장
아래서 공동 생활을 할 것을 명시했다.

베네딕토의 금욕주의는 절제로,자선행위는 인근 시골
주민들에 대한 관심으로 항상 드러났다.
중세 서구의 모든 수도원 제도는 점차로 성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르게 되어 그를 '서방 수도 생활의 스승'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 베네딕토 수도회는
베네딕토회 본원을 비롯하여 시토 수도회등
열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베네딕토의 누이동생 스콜라스티카의
축일은 2월 10일이다.

설명 ; 교회는 베네딕토회의 풍부하고 적절한
예절로 구성된 실제적인 전례에서뿐 아니라,
수많은 회원들의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서, 또한
그들의 미사 봉헌을 통해서 축복을 받고 있다.
전례는 때때로 기타,기구,라틴 음악이나 바흐의
성음악 등으로 봉헌되어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우리는 교회내에 전통적인 전례 관습을 적용시키고
이를 보존케 한 사람들에게 감사해야만 한다.

인용 ;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간주된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는 느낄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즉 머리와 지체에 의하여
완전한 공식 흠숭이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전례 의식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성교회의 행위인 까닭에, 가장 우월적인
거룩한 행위이며,그 효과를 보더라도 성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도 이와 같은 자리와 비중을
차지할 수는 없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7항)


================================


성 비오 1세(Pius I)

축일 7월 11일 

루피누스(Rufinus)의 아들로서 아퀼레이아(Aquileia)
태생인 성 비오는 “목자”의 저자인 헤르마스의
연인인 듯 여겨지며, 후일에 해방된 노예였다.
그는 140년경에 교황 성 히기누스(Hyginus)를
계승하였고, 그의 재임 기간에는 발렌티누스주의
(Valentinianism) 이단과 마르키온(Marcion)의
영지주의 이단 때문에 큰 곤욕을 당했는데,
이들은 모두 비오 1세로부터 단죄를 받았다.


================================


성 사비노(Sabinus)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축일 7월 11일 

성 사비누스(또는 사비노)와 성 키프리아누스
(Cyprianus)는 로마제국에 의한 교회박해 중에
순교하여 이탈리아의 브레시아(Brescia)에서
오랫동안 공경을 받아왔다.
그들은 아마도 그들이 공경을 받고 있는 프랑스
프와투(Poitou) 지방의 브레스(Bresse)에서
순교했을 것이다.

 
================================


성 아드리아노 포르테스큐 ( adrian fortescue)
 
축일 7월 11일 

잉글랜드의 펀스본에서 태어난 그는 데본셔 가문이고,
앤 볼린의 아내가 사촌이다. 그는 두 번이나
결혼하였는데, 첫번째는 앤 스토놀과 결혼하였으나,
12년 후에 사망하였으므로, 앤 레드와 재혼하였다.
그는 전처에서 두딸, 후처에서 세 아들을 두었다.
그는 옥스포드에서 도미니꼬회 3회원이 되었고,
궁중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바스의 기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고, 2차례나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가하고,
케서린 왕비가 칼레스로 여핼할 때에는 수행원으로
그리고 앤 볼린의 대관식에는 귀빈으로 참석하였다.
그러나 신심이 굳었던 그는 헨리 8세의 이혼과 결혼을
반박하다가 다음 해 봄에 체포되어, 1539년 2월에
런던탑에 갇혔다. 그는 끝까지 수장령을 거부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런던의 타워 힐에서 토마스 딘글리와
함께 참수 치명하였다.


================================


성 아분디오(Abundius)

축일 7월 11일 

에스파냐의 사제였던 성 아분디우스
(또는 아분디오)는 이슬람의 박해로 순교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코르도바(Curdoba)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 도시의 통치자인 칼리프 앞에 불려갔을 때
그는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해 설교를 하였다.
칼리프는 그에게 참수형 판결을 내렸다.


================================


성 야누아리오(Januarius)

축일 7월 11일 

성 야누아리우스(또는 야누아리오)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박해 때 니코폴리스(Nicopolis)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


성녀 올가(Olga)

축일 7월 11일 

러시아의 프스코프(Pskov) 출신인 성녀 올가는
러시아 키예프(Kiev)의 왕자인 이고르 1세
(Igor I)와 결혼하였으나, 945년에 남편이
살해되자 수많은 살해자들을 무더기로 처형케 했던
장본인이다. 그녀는 한동안 왕의 섭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던 중 957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생활을 완전히 개혁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백성들의 그리스도교화를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한편, 오토 1세 황제에게 선교사를
요청하기까지 하여 그녀의 아들인 스뱌토슬라프
(Svyatoslav)를 개종시키려 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자 성 블라디미르(Vladimir)가
러시아 선교에 성공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헬가(Helga)로도 불린다.


================================


성 올리베리오 플런케트(Oliver Plunkett)

축일 7월 11일 

성 올리베리우스 플런케트(Oliverius Plunkett,
또는 올리베리오)는 아일랜드 미스(Meath) 지방의
록크루(Loughcrew)에서 태어났다.
그는 1647년에 사제직을 위해 로마(Rome)에 있는
아일랜드 신학원에 들어갔고, 1654년 1월 1일
로마에 있는 포교 신학교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향 땅에 닥친 종교적 박해 때문에
바로 귀향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669년 아마(Armagh)의 대주교이자
아일랜드의 수석 대주교로 임명될 때까지 로마에서
강의를 했다. 대주교로서 돌아온 그는 바로 평화의
사도로서 종교적 열정을 갖고 그의 백성들을 방문하고,
학교를 설립하고, 사제를 서품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견진성사를 주었다.

1673년 종교박해가 재개되었을 때 주교들은 모두
칙령에 의해 추방되었다.
그러나 성 올리베리우스 대주교는 피신하였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의 많은 편지들은 그가 자신의 백성들을 저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충실한 목자로서 남으려는 결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도좌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박해가 조금 느슨해지자 그는 좀 더 공개적으로
신자들 사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1679년 체포되어 부당하게도 반역죄로
고발되었다. 그러나 정부 권력은 아일랜드 북동부의
던독(Dundalk)에서 열린 재판에서 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없었다.
그는 런던(London)으로 이송되었고, 아일랜드에서
그의 증인들이 도착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위증을 한 증인들의
도움으로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1681년 그는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평온하게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성 올리베리우스는 런던의 사형장인 타이번에서
가톨릭 신앙 때문에 죽은 마지막 순교자이고,
아일랜드의 순교자 중에서 처음으로 시복된 인물이었다.
그는 1920년 5월 2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
(Benedictus X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75년 10월 12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


성 요한(John)

축일 7월 11일 

성덕과 학덕이 뛰어나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주교로 축성된 성 요한(Joannes)은 재임기간 동안
아리우스(Arius) 이단 퇴치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679년에 교황 성 아가토(Agatho)가 소집한
로마의 시노드(Synod)에 참석하였고,
이단자들의 모략에 의하여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아리우스파에 의하여 살해된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다.


================================


성 친데오(Cindeus)

축일 7월 11일 

성 킨데우스(또는 친데오)는 소아시아
팜필리아(Pamphylia)의 사제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


성녀 펠라지아(Pelagia)

축일 7월 11일 

성녀 펠라기아(또는 펠라지아)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박해 때 니코폴리스(Nicopolis)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


성 히둘포(Hidulph)

축일 7월 11일 

성 히둘푸스(Hidulphus, 또는 히둘포)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의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태생으로 후에 트리어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설교보다는 표양으로 수많은 개종자를 교회로
이끌었고, 그리스도의 정신을 온전히 삶으로
살았던 분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한 그는 수도생활을 갈망한 나머지 스스로
보주 산맥(Vosges Mountains)으로 은신하여
은둔소를 지었고, 676년에는 오늘날의 생디에
(Saint-Die)에 수도원을 짓고 참으로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성가/축일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