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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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리스톤(Ariston),
성 크레스켄티아누스(Crescentianus),
성 푸티키아누스(Futychianus),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 비탈리스(Vitalis),
성 유스투스(Justus),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
성 펠릭스(Felix),
성녀 마르치아(Marcia)
성녀 심포로사(Symphorosa)
축일 7월 2일
성 아리스톤(Ariston),
성 크레스켄티아누스(Crescentianus),
성 푸티키아누스(Futychianus),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 비탈리스(Vitalis), 성 유스투스(Justus),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 성 펠릭스(Felix),
성녀 마르키아(또는 마르치아)와
성녀 심포로사(Symphorosa)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시작한 박해 중에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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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로케수스(Processus)
성 마르티니아노(Martinian)
축일 7월 2일
성 프로케수스(Processus)와 마르티니아누스
(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는 4세기 이전부터
공경을 받고 있으나 이분들의 전기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베드로(Petrus)와 바오로(Paulus)가 마메르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도들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
40여 명이 개종했다고 한다.
즉 성 베드로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바위에서 물이
흐르게 하여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때 위의 두 순교자가 개종하였다.
그들의 상급 관리이던 바울리누스(Paulinus)는
두 사람이 새로운 신앙을 거부토록 노력하다가
끝까지 항거하므로 칼로 베었다. 이때 그들은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하는 말을 남겼다.
그들의 유해는 아우렐리아 가도에 묻혔고,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는 자주
그들의 순교 사실을 그의 강론에서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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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모네군다(Monegundis)
축일 7월 2일
프랑스 북서부 샤르트르(Chartre) 태생인
성녀 모네군다는 두 딸을 둔 어머니였다.
처음에 그녀는 이 세상의 행복이 참된 것으로
믿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이 두 딸을
데려갔을 때, 너무나 슬픔에 복받쳐 울지도
못하다가 마침내 하느님께 대한 봉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봉헌생활을 꿈꾸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남편의 동의를 얻고서
샤르트르에 움막을 짓고 보속생활을 시작하였다.
방에는 아무런 가구도 없고 또 물과 빵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 후 그녀는 투르(Tours)로 가서 성 마르탱 경당
근처에 또 다른 움막을 세우고 같은 생활을
계속하였다. 수많은 여성이 그녀 주위에
모여들므로 하는 수 없이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생-피에르-러-푸에이유 수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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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Bernardinus Realino)
축일 7월 2일
성 베르나르디누스 레알리노(또는 베르나르디노)는
1530년 이탈리아의 모데나(Modena) 부근
카르피(Carpi)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랑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성장하여
법조계에 투신한 후 몇 년이 지나 34살에 예수회에
입회했다. 그는 성 이냐시오(Ignatius)의
초기 동반자 중 한 명인 알폰소 살메론
(Alfonso Salmeron) 신부에 의해
나폴리(Napoli)에서 수련을 받았다.
그 후 나폴리에서 10년간 사목하며 설교와
교리교육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이와
수감자들을 위해 일했다.
그의 성덕과 빛나는 설교로 인해 그는
현세 생활에서도 성인으로 인정받았을 정도였다.
신자들과 함께 사목활동을 한 후 그는
레체(Lecce)의 대학 강단에 섰으며 결국 학장이
되어 삶의 전부를 보냈다.
사망하기 6년 전에 넘어져서 다친 두 곳의
상처가 평생 낫지 않았다.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 병석에서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병에 담아 보존하였다.
그는 1616년 레체에서 선종하였다.
그 피는 다양하고도 특이한 방법으로 움직였다.
어떤 용기에서는 100년이 지나도록 액체 형태로
남아 있었다. 다른 용기에서는 거품이 생겨
그 양이 첸爭?듯이 보였다.
또 다른 하나에서는 성인의 기일에 성인의 혀를
담고 있는 유해함 근처에 피가 담긴 용기를
가져갔을 때 그 피가 “끓고” 거품이 일었던 일이
목격되기도 하였다.
1634년 교회 당국자의 참여 하에
성 베르나르디누스의 무덤이 개방되었다.
많은 양의 시신이 수습되어 뼈와 분리된 후
두 개의 유리병에 옮겨져 유골과 함께 다시
매장되었다.
성해를 입증하기 위해 증인의 참여하에 1711년에
레체의 주교는 다시 그의 무덤을 열었다.
유리병 하나는 부서졌지만 다른 병에 있는
신체조직들은 변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고
진한 붉은색 액체 속에 담겨 있었다.
의사들은 이것이 피라는 사실을 밝혀내었고,
그 보존 상태와 달착지근한 냄새는 기적적인
일이라고 증언하였다. 2년 후 경신성사성성에서
지정된 세 명의 주교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피가 액체이며 진홍색을 띠고 거품이 인다는 것을
검사했다. 1804년 레체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성인의 피를 담당하고 있던 게타노 솔라초
(Gaetano Solazzo) 신부는 그 피가 액체 상태이고
두 번이나 거품이 일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남겼다.
수녀들 역시 이 사건을 목격했으며 한 예수회 사제도
1852년에 그러한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는 것을
맹세하는 선언문을 남겼다.
이런 사실은 그와 비슷한 현상들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믿을만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1895년 더 이상 액체 상태로 남아있는 혈액을
찾을 수 없었다.
성 베르나르디누스는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후 1947년 교황 비오 12세
(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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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위투노(Swithun)
축일 7월 2일
성 스위투누스(Swithunus, 또는 스위투노)는
잉글랜드(England) 남부 웨식스(Wessex) 출신으로
윈체스터의 올드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웨식스 에그버트 왕의 전속사제 겸
그의 아들인 에텔울프의 개인교사가 되었다.
852년 그는 윈체스터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국왕의 도움으로 많은 교회를 세웠으나 항상
겸손하고 또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데 힘써서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만일 성 스위투누스의 축일에 비가 오면 꼭
40일간 장마가 계속된다는 믿음이 전하여 내려온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스위툰(Swithun) 또는 스위틴(Swithi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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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우도체오(Oudoceus)
축일 7월 2일
성 오우도케우스(또는 오우도체오)는 아마도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의 지방
지도자의 아들로 성 테일로(Teilo)의 조카였다.
그는 웨일즈(Wales) 지방에서 성장해서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성 테일로를 계승해서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580년에는
웨일스 지방 란다프의 제3대 주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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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토(Otto)
축일 7월 2일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오토는 아주 젊은 나이에 사제로 서품된 후,
1090년부터 하인리히 4세 황제 궁에 들어가서
1101년에는 그의 수상이 되었다.
그는 성좌와 황제간의 알력이 발생했을 때,
아주 용감하게 황제를 반대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고,
그 황제에 의하여 밤베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을
때에도 교황 파스칼 2세(Paschalis II)가 자신을
축성해 줄 때까지 황제의 명을 거부했던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하인리히 5세 황제와 교황 간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신명을 다 바쳤으며, 폴란드의
볼레슬라오 3세를 초청하여 동 포모제(Pomorze)
선교를 시작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기도 하였다.
그는 1189년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오토는 매우 지혜로운
성직자였을 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후원자였다.
그는 포모제(또는 포메라니아)의 복음 전도자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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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peter)
축일 : 7월 2일
성 베드로는 리니의 백작 아들이나,
4살 때에 양친을 잃었다. 매우 총명했던 그는
불과 1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공부했으며,
그후 노틀담의 성직자가 되었다. 그후
1380~81년까지는 그의 큰형에 대한 몸값으로
칼네스에서 포로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를 통하여 베드로는 겸손과 크리스챤 덕에서
현저한 진보를 보였고, 또 인생의 대전환기가
되었다. 그는 1384년에 메츠의 주교가 되고,
또 2개월 뒤에는 추기경이 되었다.
그의 높은 성덕을 알려는 것은 다음의 말
한마디이다 :"세상을 경시하고 너 자신을
경시하여라. 그때 자신의 경멸에서
기쁨을 찾아라. 그러나 다른 사람을
경멸해서는 안된다."
오늘의 성인(7월2일)
2014. 7. 2. 오후 6: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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