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6월25일)

2014. 6. 18. 오후 4:47:28

글자

♡6월 25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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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갈리카노(Gallicanus)

축일 6월 25일 

저명한 로마(Rome) 귀족이던
성 갈리카누스(또는 갈리카노)는 4세기 교회의
주요한 은인인 듯하다. 그가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 성당 그리고 요한 세례자 성당에
막대한 금액을 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기증품 가운데는 20파운드 상당의 은관을
비롯하여 15파운드의 컵 등이 포함되었고,
4필지의 방대한 토지도 들어 있었다.

갈리카누스는 콘스탄틴 대제 당시의 장군이었고,
페르시아와 쉬시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입교한 뒤에 성전 건립 기금을 희사한 것 외에도
노예를 해방시켰으며, 자기 집을 순례자들이
활용하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모든 자선 행위들은 배교자 율리아누스
통치 때까지 계속되다가, 황제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물리침으로써 유배형을
받았다. 그는 이집트로 쫓겨 가서 은수자들의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러나 박해의 손길이
사막까지 뻗쳤으므로 그는 마침내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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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고하르도(Gohard)

축일 6월 25일 

843년 낭트의 주교인
성 고하르두스(Gohardus, 또는 고하르도)가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의 탄생 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신자들이 성당을 가득 채우고
기도하고 있는 중에 노스멘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침입하였다. 이때는 주교가 미사의 성찬기도 부분을
진행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미사를 진행하다가
살해당하였다. 이때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죽었는데, 그들은 성당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고하르두스의 유해는 후일 앙제(Angers)에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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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굴리엘모(Gulielmus)아빠스  

축일 : 6월 25일

굴리엘모는 "의지와 보호"란 뜻이다.

유럽에서 최초로 번성한 수도원은 5세기에
창립된 성 베네딕토 수도회인데
하느님께서는 9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수도 정신이 헤이해진 경향이 보이자
성 로베르토, 성 베르나르도, 성 브루노 등
수도원 개혁자들과 또는 새로운 수도원의
창립자들을 보내시어 그들로 하여금
수도 생활의 쇄신을 도모하게 하셨다.
베네딕토회 은수자 수도원을 창립한
성 굴리엘모도 역시 이러한 일에 선택되신 분들
중의 한 분이시다.
그는 1085년 이탈리아의 비에몬드에서 가까운
베르첼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 적에 일찍이도 양친을 여의어
경건한 친척 손에서 자라 신심에 비상한 열심을 표시했다.
그 일면을 본다면 겨우 14세로서 일생동안
고행의 생활을 할 뜻을 하느님께 약속하고
나이도 아직 어린 몸으로 멀리 성 야고보 사도의
묘지가 있는 스페인의 콤포스텔라까지
순례의 길을 떠났다는 사실로 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순례 도중 그는 하느님께 드린 약속을
실행해 쇠로 된 허리띠를 매고 맨발로 걸으며
음식물은 모두 자비심이 많은 사람에게 구걸했다.
이탈리아에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소경이 된 어느 농부를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하느님께 기도하자 그 즉시 농부는 눈을 떴다고 한다.
그가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부근 일대에 높아져
그는 이를 귀찮게 생각하고 사람들의 존경을
피하기 위해 광야에 들어가 그곳에서 기도와
묵상을 하며 즐겁게 하느님을 섬기고 있었으나
이전부터의 희망이었던 팔레스티나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성지에 도착해 베들레헴에 있는 아기 예수의 말구유,
나자렛에 있는 검소한 성가정의 가옥 등
주님의 수많은 자취들, 그중에서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구원의 대사업을 완수하신
골고타의 언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묵상해
그의 신앙은 더욱더 견고해지고 수덕에 대한
열심은 점점 더 증가 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산적을 만났다.
모든 것을 잃고 가혹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그 재난도 성지에서 얻은 거룩한 감동과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굴리엘모는 더 한층 하느님께
직접 계시를 받고 성 베네딕토의 규율하에
온전히 세속을 떠나 적막 속에서 기도와
고행에 매진하는 은수자 수도원을 창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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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귀도 마라말디(Guy Maramaldi)

축일 6월 25일 

귀 또는 귀도(Guido)로 불리는 그는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집안 출신으로 설교자회의 입회를
신청하였다. 그의 입회는 허락되었지만 그의 출신
때문에 논란이 있었으나 곧 사실무근임이 확인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엄격한 생활을 즐겨하였고,
학업에도 뛰어나 동료들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로 변하였다. 후일 그는 신학자와
설교자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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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막시모(Maximus)

축일 6월 25일 

교회사가 젠나디우스의 “교회 저술가들의 책”속에
언급된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토리노의
주교이며, 많은 책들의 저자이며, 뛰어난 설교가이며,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특히 그는 성서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451년 그는 밀라노 시노드(Synod of Milano)에 참석하여
그 유명한 ‘교의 편지’에 서명도 하였다.
또한 그는 465년의 로마 공의회(Council of Rome)에도
참석하였다. 브루노 브루니가 편찬한 전집에 의하면
그의 설교문이 116개, 6개의 논문 그리고
주일 강론이 118개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교우들의 일상생활에도 특히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신자들의 일상 임무 중에 가장 우선하는 것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으로서, 이를 위하여 적당한
방법으로 시편을 외우라고 권하고, 또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빠트리지 말 것이며, 식사 전후에
감사기도를 바치고, 모든 일을 하기 전후에
십자성호를 그으라고 명했던 최초의 주교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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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몰록(Moloc)

축일 6월 25일 

성 몰록은 영국 출신인지 아일랜드 사람인지
확실치 않다. 어쨌든 그는 아일랜드에서
성 브렌다누스(Brendanus, 5월 16일)의 지도하에
학덕을 쌓은 후 스코틀랜드의 리즈모어(Lismore)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국왕 말콤 2세는 덴마크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성 몰록에게 기도한 결과라고 공언하며
그의 축일을 성대하게 지내도록 하였다.
그의 선교지역은 스코틀랜드 서쪽 열도인
헤브리디스(Hebrides) 제도인데, 언제 주교로
축성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는 루안(Lua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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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빌리암(William)

축일 6월 25일 

이탈리아의 베르첼리에서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난 성 빌리암은 불행하게도 아기 때에
고아가 되어 친척들에 의하여 자랐다.
그는 14세 때에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로 순례여행을 떠났다가
몬테 솔리콜리에서 은수자로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예루살렘 순례를 계획하였으나 강도들의
습격을 받은 후 이를 포기하고는
몬테 비르질리아노에서 은수자로 지냈다.

이때부터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제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몬테 베르지네(Monte Vergine)의 은수자들로 알려진
수도자들이다.
그 후 그와 그의 친구인 마테라(Matera)의
성 요한(Joannes)이 이끄는 수도원의 규칙이 너무
엄격하다고 회원들이 반대하자 그는 몬테 라체로로
가서 공동체를 세우는 등 여러 지역에 그가 세운
은둔소가 남아 있다.
그는 나폴리(Napoli)의 로제르 1세(Roger I)의
고문으로도 유명하였다.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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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시파테르(Sosipater)

축일 6월 25일 

베레아(Berea)의 그리스도인인 피리우스의 아들인
성 소시파테르는 성 바오로(Paulus)를 수행하여
그리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갔으며(사도 20,4),
바오로를 끝까지 도와준 조력자였다(로마 16,21).
전승에 의하면 후일 그는 코르푸(Corfu)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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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달베르토(Adalbert)

축일 6월 25일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가
프리슬란트(Friesland)를 선교할 때
성 아달베르투스(Adalbertus, 또는 아달베르토)는
그 성인의 부제였다. 노섬브리아(Northumbria) 사람인
그는 성 에그베르투스(Egbertus)를 수행하여
아일랜드까지 갔었다.
아달베르투스는 영혼들을 구하려는 열망에 불탔으며,
그의 관대한 마음과 인내심 그리고 겸손은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사제직을 받지 않고 부제로서 만족하였다.
또 그의 사망 연대 역시 불확실하지만, 그의 무덤은
순례의 중심지이며 늘 기적이 일어났다.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 공작은 에그몬트에
수도원을 세우고 그에게 봉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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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우로시아(Eurosia)

축일 6월 25일 

성녀 에우로시아는 프랑스 바욘(Bayonne) 지방의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 지방이
무어인들의 침략으로 인하여 점령지가 되었을 때
그 가정에 큰 비극을 안겨 주었다.
그녀의 미모와 예의가 뛰어났기 때문에 그 지방
무어인 대장이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그녀는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녀는 몰래 도망을 치려다가 사라센인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그녀의 유해는
야카 대성당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으며,
일기가 불순할 때에는 그녀에게 기도하는 전설이
오늘에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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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6월 25일 

에스파냐 북부 레온(Leon)의 알만자 출신인
요한(Joannes)은 13세 때에 프랑스로 건너가서
살다가 2년 반 동안 혼자 은수생활을 한 뒤에
몽트뢰유(Montreuil)의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었다.
6년 동안 그는 성물 보관소 책임을 다하다가
원장으로 피선되었다.
그의 능력은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성 안셀무스(Anselmus)조차 그를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64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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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페브로니아(Febronia)

축일 6월 25일 

성녀 페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니시비스에서 살았으며 그 지방 최고의 미녀로
유명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지방 장관 셀레누스(Selenus)는 그녀가
만일 신앙을 포기하고 자기 조카 리시마쿠스
(Lysimachus)와 결혼하면 석방하겠다고 달랬다.
그러나 리시마쿠스도 이미 신자가 되려고 마음을
먹기 시작한 줄 알고 그녀는 이 제안을 거부하였다.
이때부터 그녀에게 온갖 형태의 고문이 시작되어
마침내 죽게 되자 셀레누스는 거의 미친 사람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 사건 때문에 리시마쿠스와 수많은 부하들이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이 소문은 삽시간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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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로스페르(Prosper)

축일 6월 25일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에서 태어난 성 프로스페르는
아마도 결혼한 평신도로 고향을 떠나 프로방스
(Provence)로 갔다가 마르세유(Marseille)에
정착하였다.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고 하며
“연대기”를 기술하였다. 그의 주요 저서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다룬
“만민의 성소에 대하여”는 매우 귀중한 논문으로
1950년 영국에서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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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로스페르 아퀴타노(Prosper Aquitanus)

축일 6월 25일 

그에 대한 생애는 분명하지 않지만 구전에 의하면,
성 프로스페르는 어느 부자 청년에게 하신 주님을
명을 따르기 위해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뒤에 22년 동안이나 이탈리아
레기오 데밀리아(Reggio d'Emilia)의 주교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자신이 세우고 축성한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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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헨리코 츠디크(Henry Zdik)

축일 6월 25일 

헨리쿠스 츠디크(Henricus Zdik, 또는 헨리코)는
체코 서부 보헤미아(Bohemia)의 통치자의 아들인
듯하지만 태어난 곳은 체코 동부 모라비아(Moravia)이다.
1126년에 그는 모라비아 올무츠의 주교가 되었고,
그의 희망에 따라 벤체슬라우스 1세(Wenceslaus I)
공작이 대성당을 재건해 주었다.
그 후 그는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중에 그곳에서
프레몽트레 회원이 되었고, 영적인 높은 단계를
직접 체험하였다. 또한 교회에 대한 그의 정열은
다양하였는데, 1141년에는 프러시아인(Prussians)을
개종시키는 선교사로, 그리고 십자군에도 가담하였다.
또한 그는 프라하(Praha)의 스트라호프(Strahov)에
시온산 수도원과 리토메리체에 올리버 수도원을
직접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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