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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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나자리오(Nazarius)
성 켈수스(Celsus)
축일 7월 28일
성 나자리우스(또는 나자리오)의 부친은 이교도였고
로마(Rome) 군대의 장교였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열렬한 신자였기 때문에
그는 성 베드로(Petrus)나 성 바오로(Paulus)의
제자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는
열망으로 불타던 나자리우스는 자기 고향인
로마를 떠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밀라노(Milano)에 도착하여 활동하다가
그를 도와 거의 항상 함께 다녔던
성 켈수스(Celsus)와 함께 참수 치명하였다.
이 두 순교자는 네로 이후의 첫 번째 순교자로 꼽힌다
이분들의 유해는 그 도시 근교에 각각 매장 되었지만,
395년경에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찾아내어
잘 모셨다. 성 나자리우스의 무덤에서는 당신이
피 흘리시던 때와 똑같이 성인의 피가 붉고
신선하게 묻어날 때가 있었다고 한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이 성인들의 유해를 자신이
건립한 사도들의 성당에 안장하였고, 여기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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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마틴넨고,동정(1737년 순교)
축일 : 7월 28일
그녀는 북 이탈리아의 브레쉬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겨우 5개월 후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러나 어릴 때에는 특히 신심이 뛰어났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도 "성인들의 삶에서
모든 것을 본받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 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8세 때,
그녀는 고향 마을에 있던 산따 마리아 델라 미바의
카프친회에 입회하여, 1706년에 서원한 뒤로
장상직을 비롯하여 여러 직책을 맡았다.
겸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뛰어났고,
신비적인 체험은 물론 기적의 은혜까지 받았다.
또 그녀는 주님의 수난 특히 가시관의 고통을
체험했는데, 임종 뒤에 조사해보니 그녀의 이마
둘레에 이 상처의 예리한 흔적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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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트비드(Botvid)
축일 7월 28일
스웨덴 사람인 성 보트비드는 원래 외교인이었으나
영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는 특히 핀란드 노예 한 사람을 해방시켜
개종시킨 뒤, 그로 하여금 그의 고향으로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아스비요른이란 사람과
함께 성 보트비드는 발틱해를 가로질러 핀란드로
갔다. 그들은 밤을 이용하여 상륙하였으나
그가 석방시켜준 그 노예가 그들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성 보트비드는 보트키르카에 안장되었는데,
스웨덴의 순교자요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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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빅토르 1세(Victor I)
축일 7월 28일
아프리카 출신인 성 빅토르는 189년경에 교황
성 엘레우테리우스를 계승하여 로마 성 베드로좌에
올랐다. 재임기간 동안 성인은 부활절의 축일
고정과 관련되어 많은 논쟁에 빠졌고,
또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투스(Theodotus)의 그리스도
단성설 이단과 격렬한 논쟁을 하여 정통교회를
끝까지 옹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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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삼손(Samson)
축일 7월 28일
웨일스(Wales)의 글래모간 출신인 성 삼손(Sampson)은
아기 때에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으로 글래모간
란위트에 있던 성 일투드 수도원에 맡겨졌다.
그 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고, 웨일스 지방
펨브룩셔(Pembrokeshire) 연안의 캘디 섬에서
한동안 은수자 생활도 하였다.
이때 그는 피로(Piro)라는 분의 지도를 받았는데,
그의 부친 아르논과 삼촌 엄브라펠까지 함께
생활하였다고 한다.
원장이던 피로가 서거한 후 삼손이 원장으로
승계하였으나, 아일랜드를 둘러본 후에는 즉시
사임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성 두브리키우스(Dubrici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고, 또 그 지방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잉글랜드(England) 남서부
콘월(Cornwall) 지방을 다니는 순회 선교사로서
활동하면서 사우스힐과 골란트 지방의 여러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으며, 쉴리 섬 역시 방문한 듯 보인다.
그의 선교활동은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까지
계속되었는데, 그는 돌(Dol)에도 수도원들을 세웠고,
노르망디(Normandie)의 펜탈 지방에도 수도원을
세웠다. 마침내 그는 칠드베르트 왕에 의하여
돌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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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카치오(Acacius)
축일 7월 28일
성 아카키우스(또는 아카치오)는
리키니우스 황제 때에 소아시아 서안의
이오니아에 위치한 그리스의 고대도시인
밀레투스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아카티우스(Acati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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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 델라 치에사(Anthony della Chiesa)
축일 7월 28일
이탈리아 로디(Lodi)의 치에사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안토니우스 델라 치에사(Antonius della Chiesa,
또는 안토니오)는 부모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수도성소를 꽃피우지 못하다가, 22세 때에야
베르첼리(Vercelli)의 설교자회 회원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설교가이자 영신 지도자였으며
프란치스코 회원인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를
수행하여 선교한 경험도 있었다.
그가 코모 수도원에 있을 때에는 그 도시 주민들의
생활 개선을 주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무슨 직무이든 즐겁고도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1440년부터 1449년까지 교회는 대립교황인
사보이아(Savoia)의 아마데우스(Amadeus) 때문에
큰 고통을 당했는데, 이때 그는 아마데우스의 온갖
제안을 뿌리치고 합법적인 교황께 충성을 호소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성 안토니우스는 기적의 은혜와 식별의 은혜를
받았으며,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등 영적인
지혜가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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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스타시오(Eustathius)
축일 7월 28일
갈라티아(고대 소아시아의 중앙 내륙 고지대)의 순교자
성 에우스타티우스(또는 에우스타시오)는 고문을
당한 뒤 강에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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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인노첸시오 1세(Innocent I)
축일 7월 28일
이탈리아 알바노(Albano) 태생인 성 인노켄티우스
(Innocentius, 또는 인노첸시오)는 401년 12월 22일에
성 아나스타시우스 1세(Anastasius I)를 계승하여
교황에 등극하였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교황 수위권을 강조하고,
416년에 있었던 카르타고(Carthago)와 밀러비스
회의의 칙령을 고집하던 아프리카 주교들을
단죄하였으며, 펠라기우스주의 이단을 단죄하였다.
그는 유명한 경구인
“로마 로꾸타, 카우사 피니타 에스트”
(Roma loquta, Causa Finita est, 로마가 말하면
일은 끝난다)란 말로 유명하다.
그는 사제 독신제를 강력히 촉구하였고,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의
부당한 면직에 대해 투쟁하였다.
그는 417년 3월 17일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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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레그리노(Peregrine)
축일 7월 28일
성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또는 페레그리노)는
프랑스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우스
(Irenaeus, 6월 28일)의 시대에 리옹 교구의
사제로 나온다. 그는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동안
손(Saone) 강의 한 섬에서 은수자로서 지냈다.
오늘의 성인(7월28일)
2014. 7. 28. 오전 1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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