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9,27) -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2004. 9. 27. 오전 10: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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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7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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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욥기 1,6-22
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주님 앞에 모여 왔다. 사탄이 그들 가운데 끼여 있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 갔다 오느냐?" 사탄이 대답하였다.
"땅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주님께서 사탄에게, "그래,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하고 말씀하시자,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이제 내가 그의 소유를 모두 네 손에 부친다. 그러나 그의 몸에만은 손을 대지 말아라." 이에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나왔다.
하루는 욥의 아들과 딸들이 맏형의 집에 모여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는데, 한 심부름꾼이 욥에게 뛰어와서 고하였다."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스바 사람들이 달려들어 모두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꾼들을 모조리 칼로 쳐 죽였는데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그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였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양 떼와 일꾼들을 모두 살라 버렸습니다.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는 것이었다. "갈대아 사람 세 무리가 달려들어 낙타 떼를 모두 약탈해 가고 일꾼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였다."주인님의 자녀 분들이 맏형님의 집에 모여서 먹고 마시는데 광야에서 모진 바람이 불어와 그 집 네 모퉁이를 처서 무너뜨렸습니다. 젊은이들은 모두 깔려 죽었고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그제야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러고는 땅에 엎드려 입을 열었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던 것, 주님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여 죄를 짓지 않았고 하느님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복음 루가 9,46-50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제일 높으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요한이 나서서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니 막지 마라."





어제 새벽 2시. 평소와는 다른 기상을 했답니다. 전에는 2시에서 3시 사이에 저절로 눈이 떠졌지만, 어제 새벽은 저의 의사와 다르게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서 깼거든요. 즉, 제가 키우고 있는 ‘코카’라는 강아지 소리 때문에 깨게 된 것입니다.

이 새벽에 왜 이렇게 짖어댈까 하고 창문으로 밖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옆집 진돗개 2마리가 성지 마당을 서성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코카는 자기 집에 다른 집 강아지가 들어왔다고 그렇게 짖어댔나 봅니다.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 마리아의 강아지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를 키우거든요. 따라서 어미인 ‘코카’만 짖어댈 것이 아니라 ‘코카’의 아들인 ‘고지’라는 강아지도 짖어야 하는데, ‘고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강아지인 ‘고지’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창문으로 보니, 자기 집에 꼬리를 내리고 숨어 있더군요. 자기 몸의 몇 배 크기인 진돗개가 무서웠나 봅니다. 그런데 제가 옆집 진돗개를 쫓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쎄 숨어있던 ‘고지’가 저를 보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 집을 박차고 옆집 진돗개를 향해 뛰어가면서 마구 짖는 것입니다.

결국 옆집 진돗개는 저를 보고는 자기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고지’는 자기가 쫓아낸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저한테 와서는 꼬리를 마구 흔드는 것이에요. 칭찬해달라는 듯이 말입니다.

‘고지’는 자기를 지켜주는 주인이 나타났다는 사실 때문에 숨어 있던 곳을 박차고 그렇게 큰 소리를 짖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즉, 자기를 지켜준다는 강한 믿음 때문에 용기를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지켜주는 무엇이 있다는 희망만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힘들다는 이 세상에서도 나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나를 만들게 하는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 희망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힘차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희망을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고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부끄럽습니다. 저 역시 일반 사람들처럼 돈이 희망인 것으로 착각해서 ‘로또’ 복권도 산 적이 있고요, 때로는 명예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다른 이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분한 마음을 놓지 않았던 적도 있었답니다.

희망은 이런 세속적인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은 돈이 많음이 중요하고요, 아울러 높은 지위가 성공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높고 낮음이 없는 하늘나라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희망을 결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준다는 주님께 대한 강한 희망만이 내 삶 안에서 자신 있게 큰 소리 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삶 안에서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강아지도 주인이 있으면 자신감을 가지고 큰 소리로 짖는데, 더 큰 분이 내 뒤를 봐 주고 있는데 뭐를 두려워할까요?


남들과 이야기를 할 때, 자신감을 가지고 큰 소리로 말합시다.



웃으니까 즐거워진다(‘좋은친구’ 중에서)

“우니까 슬퍼지고 도망가니까 무서워지고 웃으니까 즐거워진다.”

19세기 후반에 발표된 ‘제임스 랑게 이론’으로 일부러라도 웃으면 덩달아 즐거워지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한참 울면 정말 슬퍼진단다.

그런데 어떻게 일부러 웃으란 말인가?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웃음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미국 UCLA 대학병원 이차크프리드 박사는 왼쪽 대뇌 사지 등제 신경조직 가까이에 있는 표면적 4㎠ 크기의 ‘웃음보’를 발견했다. 이 ‘웃음보’를 자극했더니 볼의 근육이 웃을 때처럼 움직였던 것이다. 또한 따로 자극하지 않아도 즐거운 생각을 촉발시키는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고 한다.

웃으면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 박동 수가 증가해 혈액 순환이 잘 되고, 웃으면서 산소를 많이 들이마시게 되므로 세포에 더 많은 영양분과 산소가 공급돼 면역력도 높아진다. 한편 웃을 때 우리 몸의 650개 근육 가운데 무려 231개가 움직이므로 뇌가 적당한 자극을 받아 긴장이 풀리고,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또 10초 동안 껄껄 웃으면 3분 동안 힘차게 노를 젓는 것과 같은 운동효과도 있다.

웃는 모습을 보고 신입사원 당락을 결정짓는 회사도 있다.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 ‘로터스’의 짐 맨지 회장은 큰소리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며 면접에 직접 참관해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유심히 살핀다고 했다. 한편 근엄함을 미덕으로 아는 독일에서는 얼마 전부터 ‘웃음 클럽’이라는 것이 생겨나, 장난과 게임 등 참가자들에게 20분 동안 11단계에 걸쳐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웃음도 전염된다. 1962년 탄자니아 어느 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12~18세 되는 여학생 몇 명이서 어떤 일로 웃기 시작한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전교생에게 전염되었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서도 웃음이 계속돼 심지어 인근 마을까지 번져 나갔다. 이 웃음 사태는 6개월여 동안 계속됐다는데, 그 지경까지 이르고 보면 웃음의 근원지였던 학교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결국 휴교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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