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9,16) - 성 고르넬리오교황과 성 치프리아노주교 순교자 기념일

2004. 9. 16. 오전 10: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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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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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15,1-11
형제 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 준 복음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되새겨 주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 들였고 또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 준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이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요 하느님의 교회까지 박해한 사람이니 실상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의 덕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사도보다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된 것입니다.
내가 전하든지 다른 사도들이 전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복음 루가 7,36-50
그때에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어 드렸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시몬아, 너에게 물어 볼 말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겠지요." 하였다.
예수께서는 "옳은 생각이다."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 주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다.
잘 들어 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글입니다.

아침에 회사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있는데 옆 칸에서 핸드폰 벨이 울렸다. 물을 내리려던 찰나, “아, 지금 사.... 사무실이에요”라고 당황한 듯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울려 통화 내용이 들렸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거래처의 여직원인 것 같았다. 그리고 둘은 최근 꽤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으나 “어, 지금 화장실이야”라는 말까지 할 단계는 아닌 모양이었다.

‘망신을 줄 순 없지. 전화 끊으면 물 내리자.’

그렇게 1분여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통화가 끝났다.

‘자, 이제 내려 볼까.’

그런데 그때 여기저기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솨아아아~.”

“고... 고맙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기다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이 글을 새벽 글의 시작으로 열은 이유가 있답니다. 사실 저 역시 예전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이런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 글에 나오는 사람처럼 배려를 하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아니, 화장실에서 무슨 전화야. 화장실 밖에 나가서 전화를 걸 것이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과감하게 물을 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배려 없는 물 내림으로 그 사람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 자주 그런 배려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모두가 자기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을 배려한다 해도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약간의 수고와 불편함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배려하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문제는 남이 잘되는 모습을 보기가 싫은 것이지요. 그 이유로 우리들은 그런 배려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아 가십니다. 그런데 그곳에 행실 나쁜 여자가 나타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신 뒤에 머리카락으로 닦습니다. 그리고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주지요. 이 모습은 예수님께 행하는 최고의 예우이지요. 초대를 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닌, 나쁜 여자라는 평가를 받는 여인이 갑자기 나타나 예수님께 최고의 예우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여인은 이제까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깊은 뉘우침을 눈물로써 표시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초대를 한 바리사이파 사람과 그 밖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흉보기 시작합니다. 참된 예언자라면 이 여인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감히 사람을 용서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수군거립니다. 하지만 이 여인의 행동으로 자신에게 손해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런 판단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이 여인이 ‘나쁜 여자’라는 것뿐이며, 동시에 예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자신들이 받지 못하는 용서를 소위 나쁜 여자라는 사람이 받았으니 말입니다.

남에 대해 하지 못하는 배려는 결국 자신에게 손해를 가져옵니다. 배려하지 못함은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가져오거든요.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수님에게 조차 부정적인 판단을 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잠시의 배려도 못한다는 것. 이는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 실천 의지가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요?


남에 대한 배려를 합시다.



악수(나태주)

가을 햇살은
모든 것들을 익어가게 한다
그 품안에 들면 산이며 들
강물이며 하다못해 곡식이며 과일
곤충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까지
익어가지 않고서는 배겨나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마을의 집들이며 담장
마을로 뚫린 꼬불길조차
마악 빵 기계에서 구워낸 빵처럼
말랑말랑하고 따스하다

몇 해 만인가 골목길에서 마주친
동갑내기 친구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얼굴
나는 친구에게
늙었다는 표현을 삼가기로 한다

이 사람 그 동안 아주 잘 익었군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진 친구의 손을 잡는다
그의 손아귀가 무척 든든하다
역시 거칠지만 잘 구워진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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