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9,14) - 성 십자가 현양 축일

2004. 9. 14. 오전 9: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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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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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민수기 21,4ㄴ-9
그 무렵 길을 가는 동안 백성들은 참지 못하고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 내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죽일 작정입니까?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습니다. 이 거친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백성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불뱀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이자, 백성들은 마침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대든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뱀이 물러가게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게 하여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았다. 뱀에게 물렸어도 그 구리뱀을 쳐다본 사람은 죽지 않았다.


복음 요한 3,13-17
그때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매일같이 공원에 나와 앉아 있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뭐든지 수(數) 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노인은 그날도 공원에 나와 사람들의 수를 헤아렸지요. 서른일곱 명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어린아이를 팔에 안고 있는 사내 하나가 노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한 발짝을 떼고 곧 넘어지곤 했어요.

사내가 아이에게 말했지요. “아가야, 넌 할 수 있어. 다시 한 번 걸어 보렴!” 이렇게 아이에게 용기를 복돋우며 다시 걸음마를 시켰지만, 두 발짝도 못 떼고 계속 넘어졌습니다. 이러기를 한 시간. 아이는 지쳐 잠시 칭얼대더니 사내의 무릎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30여 분쯤 지나 아이가 깨자 사내는 다시 걸음마를 시켰어요. 해질 무렵이 되도록 아이에게 연습을 시키던 그는 공원을 둘러보며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노인에게 큰소리로 말합니다.

“보셨어요? 오늘 제 아이가 세 걸음이나 걸었다고요.”

그러자 수(數) 세는 것을 좋아하는 노인은 퉁명스럽게 대꾸합니다.

“그런데 그 애는 오늘 마흔여덟 번이나 넘어지더군!”

이 말에 사내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며 씩 웃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많이 넘어진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걸음마를 배우는 데 마흔여덟 번쯤 넘어진 게 뭐 그리 대수입니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요.”

맞습니다. 단번에 터~~억 하고 이루어지는 것은 세상에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왜 이렇게 쉽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바라고요, 또한 내게 있어서만은 예외가 있기를 바랄까요? 편하고 쉬운 것, 그리고 멋지고 화려한 것만을 생각하다보니 세 걸음을 걸었다는 희망보다는 마흔여덟 번 넘어진 절망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네요.

저는 지금 순교 성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즉, 이곳은 종교의 자유가 없었던 시절에 주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어 놓았던 순교자의 피가 묻어 있는 곳이지요. 저는 이곳에 살면서 순교자들을 종종 머릿속에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생명이라는 것을 그리 쉽게 버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반문하여 봅니다.

‘너는 너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바칠 수 있는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순교자들이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님을 위해 바쳤다면, 현재에도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주님을 위해 바치는 행동들이 바로 또 다른 순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차, 컴퓨터, 책, PDA, 나의 지위, 통장 속에 들어 있는 약간의 돈……. 나는 이것들을 주님을 위해서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나를 위해서만 쓰고 있었지요.

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직접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우리들에게 구원을 주셨지요. 그리고 이제 우리들에게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영광의 세걸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어떤 것인가요? 마흔여덟번의 고통과 절망만을 생각하면서 아무런 십자가도 지지 않겠다고 뻔뻔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남들이 갖는 것은 다 달라고 말하고 있네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주님을 위해 쓰도록 합시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법

샤워 할때는 노래를 하라.

일년에 적어도 한번은 해오름을 보라.

매일 세 사람을 칭찬하라.

단순히 생각하라.

크게 생각하되 작은 기쁨을 즐겨라.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밝고 정열적인 사람이 되라.

항상 치아를 청결히 하라.

잘 닦인 구두를 신어라.

지속적인 자기발전에 전념하라.

악수는 굳게 나누어라.

상대방의 눈을 보라.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되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되 옛 친구를 소중이 하라.

비밀은 반드시 지켜라.

상대방이 내미는 손을 거부하지 마라.

남을 비난하지 마라.

당신 삶의 모든 부분을 책임져라.

사람들이 당신을 필요로 할때 거기에 있어라.

때로는 모르는 사람의 주차요금을 대신 내주어라.

삶이 공정할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사랑의 힘을 너무 얕보지 마라.

가끔은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이유로 샴페인을 터트려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주장할수 있는 생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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