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
|
|
재생 클릭!!
|
제1독서 고린토 1서 10,14-2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여러분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내 말를 잘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관습을 생각해 봅시다. 제물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제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알아들으십니까?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이나 우상 자체에 어떤 가치가 있다는 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이교도들이 바치는 제물이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잔을 마시는 여러분이 마귀들의 잔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또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마귀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게 해드려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강하단 말입니까?
복음 루가 6,43-49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어떤 나무든지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너희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어찌하여 내 말을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겠다. 그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큰물이 집으로 들이치더라도 그 집은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큰물이 들이치면 그 집은 곧 무너져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저는 서울에 올라갈 때면 늘 대중 버스를 이용합니다. 서울은 늘 복잡하기도 하고요, 아울러 차가 한번 막힐 때면 운전하기가 너무나 힘들거든요. 이에 반해서 버스는 제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니까 졸리면 앉아서 자도 되고요, 아울러 버스 전용 차선이라는 것이 있어서 또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버스 시간에 맞춰서 가지 않으면 한참을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버스를 한번 놓치면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도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는데요, 길에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야, 이 XX야, 이리 와서 담배하나만 주고 가.”
저는 제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말합니다.
“야, 이 XX야, 내 말이 안 들려? 이리와~~”
바로 제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저를 봤다고……. 순간적으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지요. 그리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야, XX야, 째려보면 어쩔껀데?”
가서 따지고 싶었고, 한바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과 다투는 것보다는 그냥 무시하고 가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어서 뒤돌아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지요. 물론 그 사람의 욕지거리를 뒤로 하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 사람과 다투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버스를 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다툰 것으로 인해서 마음 상한 것은 물론, 버스가 오지 않는다고 화도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참음으로 인해서 마음도 상하지 않고 버스도 곧바로 타는 행운(?)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은 반드시 지키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원수라 할지라도 말이지요. 하지만 그 말을 실천하기란 왜 이렇게 힘든지요? 그래서 주님과 타협을 하려고 합니다.
‘주님, 다른 사람은 사랑을 해도 이 사람만큼은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사랑에 대해서만은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각자에게 손해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랑하지 않고 미움의 감정을 갖게 되면 얼마나 힘든가요? 내 마음은 거의 지옥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되길 원하지 않는 주님께서는 그래서 오늘 복음처럼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어찌하여 내 말을 실행하지 않느냐?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계명에는 어떤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랑의 계명을 기억하면서 무조건 그 사랑을 실천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 손해보는 짓을 합니까? 싸우지 맙시다.
침묵의 신비 어느 날, 한 부인이 수도사를 찾아와 밤낮 남편과 싸우는데 어떻게 해야 가정을 회복시킬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수도사는 교회 뒤 우물가의 물을 성수(聖水)라고 떠 주면서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 때마다 그 성수를 한 모금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수를 마신 후에는 삼키지 말고 있다가 남편의 말이 다 끝난 후에 삼키면 한 달 후에는 가정이 회복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뒤, 이 부인은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 때마다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한 달 후에 망아지 같던 남편이 양처럼 변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부인이 수도사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정말 신비한 물이군요.” 그러자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물이 신비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 신비한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