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3,09,05) - 연중 제23주일 다해

2004. 9. 5. 오전 11: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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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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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지혜서 9,13-18
누가 하느님의 의도를 알 수 있으며, 누가 주님의 의사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확실치 않으며 인간의 의도는 변덕스럽습니다. 썩어 없어질 육체는 영혼을 내리누르고, 이 세상살이는 온갖 생각을 일으키게 하여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일을 짐작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며, 우리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것을 찾아내기도 힘든 일입니다. 하물며 누가 하늘에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지 않고, 당신께서 하늘에서부터 보내시는 성령을 받지 않고, 누가 당신의 의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지혜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의 길을 곧게 만들어 주었고, 사람들에게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가르쳐 주었으며, 사람들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제2독서 필레몬서 8ㄱ.10.12-17
사랑하는 그대여, 나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신이며 그분을 위해서 일하다가 지금 갇혀 있는 몸으로서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내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의 일로 그대에게 이렇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것은 내 심장을 떼어 보내는 셈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갇혀 있는 터이니 그를 내 곁에 두어 그대를 대신해서 내 시중을 들게 하려고도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대의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대가 선을 행하는 것이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그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서 그대와 같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는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형제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보든지 주님을 믿는 신앙의 견지에서 보든지 그대에게야 그가 얼마나 더 귀중하게 생각되겠습니까?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는 것처럼 그를 맞아 주시오.


복음 루가 14,25-33
그때에 예수께서 동행하던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데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집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때 이만 명을 가느리고 오는 적을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 먼저 앉아서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만일 당해 낼 수 없다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청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갑곶성지의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하긴 내일 모레 있을 제1회 인천교구 순교자 현양대회에 맞추어서 공사를 시작하였으니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사실 이곳에서 현양대회를 한다고 했을 때, 제가 있는 갑곶성지를 아시는 분들은 이런 말을 하셨답니다.

“코딱지만한 곳에서 무슨 현양대회야? 한 500명 정도 들어가냐?”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힘주어서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2000명 정도는 수용할 수 있도록 공사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지요. 특히 지난번에 있었던 태풍으로 인해서 공사 기한이 약간 길어졌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제발 이번 공사만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특히 비는 더 이상 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걱정 많던 공사도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비가와도 상관이 없는 청소 정도의 일만 남았거든요. 얼마나 주님께 감사하던 지요. 그 크신 사랑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공사 걱정만 하던 제가 이제는 또 다른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공사만 해결되면 어떤 걱정도 없이 잘 살 것 같았지만, 또 다른 걱정으로 궁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걱정은 바로…….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하나?’ 라는 것이지요. 지금 제가 있는 곳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를 않거든요. 이렇게 난방이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지난 겨울을 보낸 기억이 있는 저로써는 다시 다가오는 겨울이 또 하나의 걱정꺼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를 보면서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실 난로 하나로 겨울을 보내면서 저는 조그마한 소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뜨거운 물로 집에서 샤워를 하는 것이었지요. 특히 눈 내리는 한 겨울에 찬물로 샤워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난방이 되지 않아서 따뜻한 온기가 전혀 없는 방이라 할지라도 뜨거운 물만 나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은인이 설치해주신 순간온수기로 지금은 한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소원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이제까지 제가 원했던 것들이 다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또 다른 소원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의 욕심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예수님 제자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주님을 따릅니다. 그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역시 소원을 만들어갑니다.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소원을 만들어가는 것은 물론, 가족이나 친지에 대한 소원 역시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 안에서 그들은 처음에 가졌던 단순한 마음이 차츰 퇴색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주님께서는 다시금 핵심을 찍어서 말씀해주십니다.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주님 외에는 모든 것이 부차적인 것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요? 그 핵심만을 쫓아서 가고 있나요? 혹시 저처럼 계속해서 쓸데없는 소원들을 만들어 가시는 것은 아닌지요?


꿈은 이루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의 꿈을 이루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한 선행 한 가지를 합시다.



진리는 쓰다(오쇼 라즈니쉬)

진리는 결코 편안하지 않다.
처음에는 매우 불편하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끝에는 쓰다.
진리는 처음에는 쓰지만 마지막에는 달콤하다.
그러나 사실 진리가 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오랬동안 거짓말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진리가 나타났을 때 우리의 거짓말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진리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진리가 나타나면 모든 거짓말들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처음에는 혼돈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혼돈으로부터 별들이 태어난다.
그러므로 혼돈은 창조력이다.
오직 극소수의 용감한 영혼만이 진리를 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짓 속에서 응석받이로 살고 있다.
그들은 커다란 곰인형들을 껴안고 편안한 생각에 매달려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불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불멸의 생각에 집착한다.
사람들은 내게 와서 질문을 한다.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대답한다.

"먼저, 죽기전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아보라. 그대는 살아 있다. 지금 그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삶이다."

그대가 삶을 안다면, 바로 이 순간이 삶임을 안다면, 그대는 죽음이 닥쳤을 때 같은 인식을 사용하여 죽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같은 인식이다.
삶을 비추는 거울이 똑같이 죽음을 비춘다.
그리고 만약 그대가 의식적이라면 죽음도 탄생도 없고, 오직 영원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하나의 생각이 아니라 체험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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