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9,02) -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2004. 9. 2. 오전 9: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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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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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3,18-23
형제 여러분, 어느 누구도 자기 기만에 빠져서는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기가 세속적인 면에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의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서에 "하느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제 꾀에 빠지게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이 헛되다는 것을 아신다."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베드로도 이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복음 루가 5,1-11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 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 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먼저 어제 ‘새벽을 열며’를 열지 못한 점, 다시금 사과를 드립니다. 미리 공지를 했듯이, 주님의 곁으로 가신 인천교구의 강성욱 마태오 신부님 장례로 인해 새벽을 열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신부님의 장례는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강 마태오 신부님을 위한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럼 ‘새벽을 열며’ 시작합니다.

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어 밤중에 몰래 길바닥에 커다란 돌 한 개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다니기 시작해요.

장사를 하는 사람은 돌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화를 내며 옆으로 피해서 지나갑니다.

“누가 이 큰 돌을 길 한복판에 들어다 놓았지?”

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투덜대며 비난과 불평을 늘어놓을 뿐 그 큰 돌을 다른 곳으로 치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에 한 농부가 채소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지나가게 되었어요. 돌 앞에서 걸음을 멈춘 농부는 큰 돌을 길가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큰 돌이 길 한복판에 놓여 있으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을 겪겠어!”

수없이 들어 올리고 밀어낸 끝에 마침내 농부는 돌을 치우는 데 성공했어요. 그런데 돌이 놓여 있던 자리에 반짝이는 보석 주머니와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편지 내용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이 보석은 돌을 치운 분의 것입니다.”

어떤 불만을 표현하는 데는 상당히 익숙한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정작 이 불만들을 해결하는 데는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문제의 해결 방법이 나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이기심들, 또한 좋은 것은 내가 취해야 하고 나쁜 것은 남이 취해야 한다는 착각들. 그래서 내가 남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어리석음을 선택하지 않나요?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어 나갈 때, 문제의 해결은 물론 더 큰 은총을 받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 역시 이런 태도를 간직했기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훌륭한 학식과 덕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뇌물을 사용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만큼 돈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난한 시골의 한 명의 어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다음의 두 가지로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예수님께 배를 빌려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배에 올라타셔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주십니다. 사실 한 어부의 배가 강단이 아니지요. 어부의 배는 단순히 고기를 잡는 배일뿐입니다. 따라서 가르치기 위해 올라타는 배 주인에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그 배의 사용료를 내셨을까요?). 그 배를 이용해서 고기를 잡을 때 비로소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께 배를 내어드립니다.

부르심을 받을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치라’는 목수 출신의 말을 따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이렇게 자신의 것을 나눈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조건이 됩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즉, 주님을 위해 얼마만큼 나의 것을 내어 놓았나요? 또한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나요?

그런데 이렇게 자격 없는 우리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구원을 위한 주님의 부르심은 계속됩니다. 엄청난 사랑의 부르심이……


무거운 바위 밑에는 보석이 있습니다. 무겁다고 돌아가지 마시고, 지금 나의 길 한 가운데 있는 고통과 시련의 바위를 치우도록 노력해보세요.



오늘은 채찍을(이외수, ‘바보바보’ 중에서)

사람들은 대개 우산이 없이 거리를 걷다가 비가 내리면 빨리 걷고 눈이 내리면 느리게 걷는다.

얼마나 현실적인가.

타성을 따라 살아가는 인간은 현실에 자신을 재단하고 살아가는 일을 합리화하면서도 현실을 부정하는 특성을 버리지 못한다.

그대의 인생은 절대적으로 그대가 경영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대는 혹시 그대의 인생을 스스로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주관대로 인생을 살아가기는 어려운 법이지만 자신을 주관대로 살아가는 인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자는 세상을 원망할 자격도 없다.

강태공이 낚싯바늘을 펴고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운 이유가 세월을 낚기 위함이라고 대답하기는 쉽지만 그대가 세월을 낚기 위해 낚싯바늘을 실지로 한번이라도 펴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큰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지 않는 법.

이는 강태공이 낚싯바늘을 펴고 미끼 없이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마음과 같다.

그대가 젊은 나이에 인생역전을 절대적으로 로또 따위에 의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대의 인생은 끊임없이 그대에게 잔인한 시련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불평하기 전에 그대를 먼저 개선하기를 권유한다.

그대여 이제 그만 그대로부터 깨어나라.

그대의 비굴함에 스스로 전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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