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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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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4,6ㄴ-15 형제 여러분, 나는 아폴로와 나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아 "한계를 넘지 말라."는 교훈을 배워 남을 깔보고 주제넘게 자기 편을 추어올리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여러분을 남보다 낫다고 보아 줍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이데 왜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것인 양 자랑합니까?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 놓고 벌써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함께 우리도 한번 왕 노릇을 해 볼 것이 아닙니까? 내 생각에는 하느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처럼 여기시고, 그들 중에서도 맨 끝자리에 내세워 세상과 천사들과 뭇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되었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현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자이고 여러분은 강자입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있는데 우리는 멸시만 받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욕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우리가 받는 박해를 참아 내고 비방을 받을 때는 좋은 말로 대답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인간의 쓰레기처럼 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내 사랑하는 자녀로 생각하고 교훈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지도해 줄 교사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교인으로 태어나게 한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복음 루가 6,1-5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때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 몇몇이 "당신들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들밖에 먹을 수 없는 제단의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우연히 2001년에 제가 쓴 일기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있을 때였지요. 그 일기장의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공개해봅니다.
학원에서 내 옆에 앉은 친구가 내게 말한다.
“형, 정말 신부 맞아? 형은 정말로 엽기 신부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하긴 일반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면 도저히 신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술 잘 마시지, 담배 열심히 피지, 머리도 염색하고 다니지…….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서 누가 신부라고 말하겠는가?
사실 성당에서 엄숙하게 미사를 집전하고, 신자들의 고백을 들어주는 일반적인 신부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일 것이다. 이런 나를 되돌아보면서 내게 질문을 던져본다.
“명연아. 너는 도대체 무엇에 정신을 쏟고 있는 거냐? 너는 과연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제대로 지키고 있니?”
부끄러울 뿐이다. 바로 사랑 실천에 온 힘을 쏟아부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수적인 것에 정신을 쏟아 부으면서 아등바등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미사 때에도 신자들의 가슴에 와 닿는 강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엽기 신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3년이 넘은 일기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금 역시 다른 부수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지금은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머리를 염색하면서 외모에 신경 쓰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은 여전히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네요. 마치 중요한 사랑의 계명이 아니라, 그 사랑의 계명을 뒷받침하는 부수적인 조항만을 강조하면서 예수님께 대들고 있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그 쫀쫀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이런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오늘 하루만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친절해야지.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그들 덕분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대해야지.
오늘 하루만은 남을 헐뜯지 말아야지. 어떤 상황에서나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도록 애쓰고,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할 만 한 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해야지.
오늘 하루만은 남을 나무랄 때 마치 내 잘못을 나무라는 것처럼 자제력과 유머를 가지고 기분 좋게 대해야지.
오늘 하루만은 내가 하는 일에 모두 완벽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말아야지. 무슨 일이든 빨리 해서 신기록을 수립하려는 생각을 버려야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억지로가 아니라 내 능력에 맞게 해나가려고 노력해야지.
오늘 하루만은 내가 적성에 꼭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지. 내가 직책과 봉급에 걸맞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버려야지.
오늘 하루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시대에 감사해야지. 그리고 나를 강제로 일시키는 사람이 없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지.
오늘 하루만은 직장에서 건강하게 일하고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해야지. 병원의 수술대기실에 있지 않는 것이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야지.
'오늘 하루만을'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 이제 엽기 신부에서 벗어나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제자가 될 것을 이 자리를 빌어서 다짐해 봅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치장을 하지 맙시다. 대신 마음을 화려하게 꾸며보면 어떨까요?
오늘을 산다는 것은(한비야의 “중국견문록”中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는 것, 그래서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풍요로워지는 것.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확실한 오늘을 무시한 채 지나간 어제나 불확실한 내일을 그리워하는 것이 우리 나약한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은 빨리 간섭받지 않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중학생들은 하루 빨리 시험 지옥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되었으면, 대학생들은 빨리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으면, 한창 바쁘게 일할 때는 빨리 정년퇴직을 해 한가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항상 한 발짝 앞을 갈망한다. 오늘을 즐기지 못하고 내일만 생각하며 사는 거다.
반대로 어제만을 부러워하면서 사는 사람도 많다. 40대는 30대에게, 30대는 20대에게 말한다. 참 좋은 나이라고, 그러고는 반드시 나이 타령이 이어진다. 내가 5년만 젊었어도 어쩌구 저쩌구......
이 모두가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핑계이자 자기 기만이다. 마치 무슨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기회가 없는 것이,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순전히 나이 때문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 나이란 어떤 나이인가. 어제 우리가 그렇게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던 날이며, 내일 우리가 그렇게 되돌아가고 싶은 날이 아닌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자......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지금 한창 제철인 사과와 배를 맛있게 먹고 있는가? 아니면 철 지난 딸기나 아직 나오지도 않은 곶감을 먹고 싶어하며 애를 태우고 있는가?
우리가 가진 것은 오늘뿐이다. 지금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을 고마워하자.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누리고 즐기자.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