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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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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9,16-19.22ㄴ-27 형제 여러분,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내 자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무슨 보수가 있겠습니까? 보수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받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 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루가 6,39-42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소경이 어떻게 소경의 길잡이가 될 수 있겠느냐? 그러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는 없다. 제자는 다 배우고 나도 스승만큼밖에는 되지 못한다.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도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더러 '네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낼 수 있다."
얼마 전, 방송 녹음으로 명동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명동 거리를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강화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들을 명동 거리 안에서 많이 볼 수 있었지요. 우선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요, 또한 여러 종류의 수많은 물건들이 저를 유혹했습니다. 저는 돌아다니면서 가방을 하나 살 계획을 세웠습니다. 들고 다닐 가방이 하나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보면서 어떤 가방을 살까 궁리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떤 가방 가게 앞에서 아가씨 두 명이 간이 부채를 나눠주면서 판촉행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앞을 지나가면서 저에게도 부채를 나누어 주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게를 소개하면서 부채를 나누어 주어도 제게는 주지 않더군요. 저는 다시 한 번 그 앞을 지나가면서 부채 받기를 원했지요. 그러나 이번에도 제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부채 하나의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만 소외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얼마나 서운하던지요. 물론 저의 모습을 보면, 물건 살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짧은 머리에 새까만 얼굴, 운동화와 함께 아무렇게나 입은 옷. 이렇게 생기고 이렇게 차려 입은 제가 물건을 살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나 보지요. 아무튼 저는 서운한 마음에 그 가게에서 가방을 사지 않았습니다.
어제 또 방송 녹음 때문에 명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이 제게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종이 한 장을 나눠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학생, 이것 좀 봐줘요.”
‘학생’이라는 말. 얼마 만에 들은 말인지요. 방송국에 가서 이 말을 자랑스럽게 했더니만,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합니다.
“할머니들은 눈이 침침하잖아요. 그래서 ‘학생’이라고 말했겠지요.”
물론 그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의 말은 저의 기분을 상당히 좋게 한 것은 분명했거든요. 사실 할머니가 나눠준 종이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제게는 그다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개신교 홍보 전단지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학생’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 그 전단지를 책 사이에 끼워놓았답니다.
어떤 커다란 곳에만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렇게 작은 행동을 통해서도 다른 이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반대로 나의 작은 행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으며, 또한 남의 티를 빼내기 전에 자기 눈의 들보부터 빼라고 하시지요. 즉, 예수님께서는 남에 대해서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저의 예처럼 작은 행동도 상대방에게는 커다란 아픔과 상처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작은 행동들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설까요? 행복을 전하는 행동일까요? 아니면 아픔과 상처를 주는 행동일까요?
작은 행동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남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합시다.
사람의 됨됨이(좋은생각 중에서) 어떤 임금이 숲으로 사냥을 나갔다. 한참을 헤맨 끝에 그는 새끼 사슴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기쁜 표정으로 그는 한 신하에게 새끼 사슴을 넘겨주면서 궁전으로 데리고 돌아가도록 했다.
신하가 새끼 사슴을 데리고 궁전으로 향하는데 잠시 뒤 저쪽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여긴 신하가 뒤를 돌아보니 어미 사슴이 울면서 겁도 없이 신하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신하는 임금의 명령을 떠올리며 새끼 사슴을 데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어미 사슴도 뒤지지 않고 계속 새끼 사슴을 부르며 따라 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비단 사람 뿐만 아니라 온갖 미물의 자연에까지 미치는 일이거늘….'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신하는 마침내 새끼 사슴을 목에 묶인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어미 사슴이 새끼 사슴을 데리고 멀리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궁으로 임금은 신하가 혼자서 돌아온 것을 알고는 크게 분노하며 신하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로부터 일년 뒤 임금은 왕자에게 스승을 필요할 나이가 되자 그 신하를 감옥에서 불러왔다.
"그대가 왕자의 스승이 되어 훌륭한 가르침을 내려주오."
임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주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임금에게 물었다.
"폐하께 죄를 지어 감옥에 갇혀 있던 그 자를 불려들여 태자의 스승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왕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 뜻을 어겼는지는 모르나 임금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새끼 사슴 한 마리도 귀하게 여긴 그 마음은 갸륵하지 않은가.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 또한 내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훌륭히 가르치지 않겠는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