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
|
|
재생 클릭!!
|
제1독서 미가 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함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 그의 핏줄을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간다.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시리라.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 주님의 힘을 입고, 그 주 하느님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하리니, 그의 힘이 땅 끝까지 미쳐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
복음 마태오 1,1-16.18-23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았으며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았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람은 암미나답을, 암니다답은 나흐손을,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았으며 보아즈는 롯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아비야는 아삽을, 아삽은 여호사밧을, 여호사밧은 요람을, 요람은 우찌야를, 우찌야는 요담을, 요담은 아하즈를,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므나쎄는 아모스를, 아모스는 요시아를 낳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무렵에 요시야는 여고니야와 그의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다음 여고니야는 스알디엘을 낳았고 스알디엘은 즈루빠벨을,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아비훗은 엘리아킴을, 엘리아킴은 아졸을, 아졸은 사독을, 사독은 아힘을, 아힘은 엘리훗을, 엘리훗은 엘르아잘을, 엘르아잘은 마딴을, 마딴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긴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녁 7시 넘어서 잠이 들은 뒤 새벽 3시에 일어났으니, 도대체 몇 시간을 잔 것이에요? 그것도 아주 단 잠을 잘 수가 있었답니다. 발 쭉 펴고…….
어제 인천 교구에서는 처음으로 순교자 현양대회가 이곳 갑곶순교성지에서 있었답니다. 정말로 주님께서는 저만 사랑하시는 지, 어제 특별히 비까지 내려주시는 은총의 시간이었지요. 사실 새벽 4시부터 내리는 비가 얼마나 밉게 느껴지던지. 주님께 원망의 기도를 바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답니다.
‘주님, 어쩌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제까지 제게 내려주신 그 사랑을 오늘까지 계속되어야지 왜 멈추십니까?’
너무나도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달 넘게 공사했던 성지의 멋진 부분들을 신부님들과 교우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태풍을 동반한 비로 인해서 질퍽하고 불편한 성지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속으로 주님께 이런 말도 했지요.
‘주님, 당신이 저만 사랑한다고 사람들 앞에 말했던 것 취소입니다. 제가 그토록 밉습니까? 그래요. 제가 그동안 너무나 교만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신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시간만큼은 좋은 날씨를 주셔야지요.’
물론 겉으로는 이런 표현을 할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런 생각들로 무척 복잡했었답니다. 그런데 미사를 봉헌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비로 인해서 사람들은 앉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우의와 우산으로 비를 극복하고 미사를 참석하시는 분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성체분배 때에, 오랫동안 내린 비로 떨면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할머니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저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시설만을 바라보았고, 날씨 탓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우리 인간의 육체를 취하셔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신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점검하러 오신 것일까요? 즉, 저희 인간들처럼 보수 공사를 하러 직접 오셨을까요? 아니지요. 그런 것이 아닌, 바로 우리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처럼 인간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것을 제외한 그 어떤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 어디에 관심을 두고 계신지요? 주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우리 인간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주님께서 관심을 두는 인간에게 관심을 두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마음이 쉬는 의자’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듯이 내 마음도 날마다 깨끗하게 씻어 진실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면 좋겠습니다.
집을 나설 때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살피듯이 사람 앞에 설 때마다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추스려 단정한 마음가짐이 되면 좋겠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치료를 하듯이 내 마음도 아프면 누군가에게 그대로 내 보이고 빨리 나이지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듯이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그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에 깊이 간직하는 내가 되면 좋겠습니다.
위험한 곳에 가면 몸을 낮추고 더욱 조심하듯이 어려움이 닥치면 더욱 겸손해지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내가 되면 좋겠습니다.
어린 아이의 순진한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듯이 내 마음도 순결과 순수를 만나면 절로 기쁨이 솟아나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불을 켜듯이 내 마음의 방에 어둠이 찾아 들면 얼른 불을 밝히고 가까운 곳의 희망부터 하나하나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