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9,13)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2004. 9. 13. 오전 10: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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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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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11,17-26.33
형제 여러분, 이번에는 칭찬할 수 없는 일을 한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이익보다는 해를 자아낸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모이는 교회 안에 당파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것이 전연 헛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진실한 사람들이 드러나려면 분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온 것을 먼저 먹어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
각각 자기 집이 없어서 거기에서 먹고 마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내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이래도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일만은 칭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 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거룩한 회식을 하려고 교회가 모일 때에는 서로 남을 기다려 주십시오.


복음 루가 7,1-10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뒤에 가파르나움으로 가셨다.
마침 그때 어떤 백인 대장의 종이 중병으로 거의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이 대단히 아끼는 종이었다. 백인 대장이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유다인의 원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집에 오셔서 자기 종을 살려 주십사 하고 간청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와서 간곡히 부탁드리기를 "그 백인 대장은 도와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셨다.
백인 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백인 대장은 친구들을 시켜 예수께 전갈을 보냈다.
"주님, 수고롭게 오실 것까지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집에 모실 만한 사람이 못 되며 감히 주님을 나가 뵐 생각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낫겠습니다.
저도 남의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에도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또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종에게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감탄하시며 따라오는 군중을 돌아다보시고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본 일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심부름 왔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종은 이미 깨끗이 나아 있었다.





어제는 인천의 주안1동 성당 교우분들이 이곳 갑곶성지로 순례를 오셨습니다. 한 700분 이상의 교우분들이 오셨지만, 비가 많이 와서 고생을 좀 하셨지요. 사실 저 역시 이곳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주님께서는 더 깊은 뜻이 있으셨는지 비와 바람을 선물로 주시네요.

아무튼 저는 그분들이 오시기 전에 주변 정리를 신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지난 7일에 있었던 순교자 현양대회 때 썼었던 부직포와 바닥 깔판도 아직 치우지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아침 일찍 신학생과 함께 열심히 치웠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저희의 모습은 아주 가관이었지요. 옷에는 황토가 잔뜩 묻어 있었고요. 얼굴과 손, 발에도 잔뜩 묻어 있는 황토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주 흉할 정도였답니다.

저는 미사가 시작하기 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그동안 잘 되던 순간온수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찬물만 나오는 순간온수기……. 정말로 샤워하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지저분하고 흉한 제 모습으로 미사를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특히 미사 시간이 다가오니 찬물로라도 샤워를 해야겠지요. 또 지난 1,2월과 같은 추운 겨울에도 찬물로 샤워를 했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 물은 너무나 찼고요, 제 머리카락이 주삣 서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답니다. 그동안 저의 몸이 뜨거운 물로 단련이 되어서 그랬나 봅니다.

이렇게 찬물로 샤워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나 편안한 것은 제 자신을 안일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고통과 아픔 역시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왜냐하면 안일한 마음으로는 주님께 대한 강한 믿음을 간직할 수 없고, 오히려 이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강하고 진정한 믿음이 나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백인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의 종이 중병으로 누워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가서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사실 자신의 점령국 사람에게 고쳐달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병도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의 병 치료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물건 취급(그 당시에 종은 물건과 똑같이 매매가 되었지요)을 할 수도 있었던 종의 치유를 위해서 예수님을 청한다는 것. 그것도 편하게 예수님이 직접 와서 치료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 한 마디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일까요?

무엇이든 주님께서 직접 다 이루어지게 하시길 바라는 우리들의 안일한 마음을 깊이 반성하게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안일한 마음을 버리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당신 앞에 나오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요? 혹시 몸이 지저분한데도 따뜻한 물로만 매일 씻었다고, 찬물로는 씻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보이는 것은 아닐런지요?


누가 해준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나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 적극적으로 살아봅시다. 주님께서 주신 이 멋진 세상을…….



감로의 맛(오쇼 라즈니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는 법을 배워라.
단지 앉아 있는 법, 자신 속에서 휴식하는 법, 느긋하게 긴장을 푸는 법을 배워라.
그대는 끊임없이 뭔가에 열중하도록 길러졌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는 항상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키워졌다.

비록 그들도 몰랐고 의도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우리를 오염시키고 타락시켰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대를 도와주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무의식적이었다.
그런데 무의식적인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다.
단지 해만 끼칠 뿐이다.

그들은 사람을 쉬지 못하게 만들고, 안절부절, 초조하게 만든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모두들 항상 달리고 있다.
속력 그 자체가 중요해졌다.
마치 그것이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라도 하듯이...

명상가는 오직 본질적인 것 만을 배워야 한다.
비본질적인 것에 자신의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명상가는 느긋해지는 법, 휴식하는 법, 휴식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서서히 그는 자신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그대가 자신의 중심에 닿는 순간 그대는 영원에 닿게 되고 시간을 초월하게 된다.
그대는 처음으로 감로의 맛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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