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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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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15,12-20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만일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 리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는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짓 증인이 되는 셈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복음 루가 8,1-3 그때에 예수께서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두 제자도 같이 따라다녔다. 또 악령이라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저는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코카와 고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코카스파니엘 종 두 마리를 키우고 있지요. 그런데 성지에 오시는 순례객들께서 이 강아지들을 보면서 이런 말씀들을 하세요.
“좋은 강아지인데, 훈련 좀 시키세요.”
강아지한테 무슨 훈련인가 싶었는데, 요즘에는 다들 이런 훈련들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야 매너도 좋아지고요, 주인의 말도 더 잘 듣는다고 하데요.
저는 차마 개 훈련장에 보내지는 못하고요(값이 그렇게 비싸다고 하네요),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그 내용들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그동안 저의 강아지들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 내용 중에서 몇 가지만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강아지에게 공포심을 준다. . 외로움이나 욕구불만으로 노이로제에 걸려서 비통한 목소리로 짖거나 신문지를 계속 찢는 등의 행동을 한다. . ‘왜 그런 짓을 했어?’라는 식의 잔소리로 야단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 의미 없는 체벌은 공포심을 심어준다.
이밖에도 제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래서 강아지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사실 제 기분에 맞춰서 강아지들을 대할 때가 많았거든요. 즉, 제가 기분이 좋으면 강아지들에게 너그러워졌고요, 반대로 기분이 좋지 않으면 강아지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욕구불만의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이렇게 저는 잘 몰랐기 때문에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친해지지도 못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문득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주님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까워지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내 기분에 맞춰서 주님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잘못을 했던 것은 아닐런지요?
오늘 복음에도 나와 있듯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와 많은 여인들이 자기네 재산을 바쳐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지요.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을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지요. 그리고 이 분만이 삶의 모든 희망이 되는 구세주이라는데 확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도 이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생활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주님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나요? 강아지도 알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는데, 하물며 우리 삶의 희망이 되실 분을 알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나요? 혹시 강아지들을 위해서는 책을 읽으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책 한 권 읽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께 끝까지 매달릴 수 있으며, 주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공짜가 많은 세상이기는 하지만, 노력도 하지 않고 주님을 알게 해달라는 공짜 심리는 이제 버려야지 않을까요?
주님을 알기 위한 독서를 합시다. 성서든 아니면 영적 서적이든 상관없습니다.
오직 감사의 눈물 뿐(오쇼 라즈니쉬) 우리는 과거에 의해서 제약을 받는다. 과거를 따라 살고, 과거를 위하여 살고, 과거를 위하여 우리 자신을 희생한다. 그것은 곧 우리에게는 무덤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 전체가 계속해서 후퇴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진정한 삶의 방법이 아니다. 아마도 서서히 자살하기에는 좋은 방법이 될지 모르나 삶의 방법은 아니다.
진짜로 살기 위해서는 순간마다 계속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그리하여 순간마다 새롭고 신선해져야 한다. 이른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연못에서 막 피어나는 연꽃처럼 신선해야 한다. 모든 순간이 신선하고, 젊고 생기에 넘치고, 순결해야 한다. 과거의 짐을 내려 놓아야 한다.
삶이 너무나 많은 놀라움, 너무나 많은 경이, 너무나 많은 선물을 가져다 주어 그것을 보답할 길이 없다. 오직 감사의 눈물 뿐, 오직 감사로 두근거리는 가슴 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