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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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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1서 15,35-37.42-49 형제 여러분,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살아나느냐?"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심은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밀이든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뿐입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 자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생명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영적인 것이 왔습니다. 첫째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땅의 존재이지만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흙의 인간들은 흙으로 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의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습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복음 루가 8,4-15 그때에 여러 동네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큰 군중을 이루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서 발에 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가 쪼아 먹기도 하였다.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서 싹이 나기는 하였지만 바닥에 습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나무들이 함께 자라서 숨이 막혀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잘 자라나 백배나 되는 열매를 맺었다." 하시고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예수께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이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씨가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아 가기 때문에 믿지도 못하고 구원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씨가 바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뿌리가 내리지 않아 그 믿음이 오래가지 못하고 시련의 때가 오면 곧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 걱정과 재물과 현세의 쾌락에 눌려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꾸준히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제는 작업을 하던 중에 야외 화장실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지식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확인했지요. 물론 어디에 이상이 있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네요. 그래서 전기업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이곳 성지 전기공사를 했던 업자가 강화도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전화를 건 지 얼마 안 되어 성지를 방문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하시는 말씀.
“이거, 토목공사 하면서 선을 끊어 먹은 거 아니에요?”
그러면서 토목공사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 8월 내내 공사를 하면서 이런 체험을 많이 했답니다. 이곳 성지에 있어서 대대적인 공사이다 보니 여러 업자들이 들어왔지요. 토목 업자, 전기 업자, 음향 업자, 가로등 제작업자, 에어컨 업자…….
그런데 어떤 하자가 있으면, 대부분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서로 흠집 내기에 바쁩니다.
“이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고요, 그쪽에서 이런 실수를 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렇게 듣기에 좋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면 더 감사 할텐데 그들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그런데 한 업자만이 다른 업자들과 다른 것입니다.
어디에 하자가 생겨도 남 탓을 하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요, 만약에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어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해결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분에게 믿음이 가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분에게 일을 맡기시겠어요? 바로 후자처럼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성실하게 행하는 사람을 신뢰하여 일을 맡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에게 그러한 성실한 모습을 원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실한 모습을 갖춘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쓰실 것입니다. 사실 남의 탓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책임 회피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끊임없이 책임 회피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는 모습을 주님께서 좋아 하실 리가 결코 없겠지요.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간직해야 할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 비유 말씀을 해주시면서 그에 대한 설명도 하십니다. 즉, 우리들의 마음을 좋은 땅으로 만들어 주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꾸준히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시지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책임회피를 하면서 남의 탓만 하는 모습일까요? 이 모습을 우리들도 싫어하는데 설마 주님께서는 좋아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남을 통해서 발견하는 좋은 모습들을 똑같이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바로 좋은 땅을 만드는 비결임을 가르쳐주십니다.
과연 내 마음은 어떤 땅의 모습을 취하고 있을까요? 길바닥? 바위? 가시덤불? 좋은 땅?
왠지 제 마음이 좋은 땅이 아닌 것 같아서 긴장되네요.
남에 대한 말은 하지도, 듣지도 맙시다.
내 인생에 등불을 다시 켜 준 사람, 데레사에게... 어느 심술쟁이 할머니가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었지만 성격이 너무 까다로운 탓에 아무리 인내심 많은 자원 봉사라도 며칠은 견디지 못했다. 소문을 듣고 데레사 수녀가 나섰다.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자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는 열심히 바닥을 쓸고 먼지를 털었다. 옷은 빨아 널고, 더러운 곳은 모두 소독했다. 그러다가 예쁜 등 하나를 발견했다. 그제야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만지지 말아요. 남편이 결혼할 때 선물로 준 거라오. 지금 이런 꼴로 사는 내게는 가장 소중한 거지.”
청소를 마친 그녀는 할머니께 책도 읽어 드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집을 매일 찾았다. 이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여전히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졌다. 급하게 할머니의 집으로 달려간 데레사 수녀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미 숨을 거둔 할머니의 방에는 등이 환하게 밝혀 있었고 메모지 한 장이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등불을 다시 켜 준 사람, 데레사에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