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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3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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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전도서 1,2-11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그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가삐 가고, 남쪽으로 불어갔다 북쪽으로 돌아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는 것을. 세상만사 속절없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수가 없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 리 없다. "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마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 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을.
복음 루가 9,7-9 그때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는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예언자 중의 하나가 되살아났다고 하는 말도 들려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 베어 죽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소문에 들리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면서 예수를 한 번 만나 보려고 하였다."
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납니다. 보통 2시에서 3시쯤에 일어나지요. 그런 저를 두고서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들을 하십니다.
“아니 그렇게 일어나서 어떻게 생활을 해요?”
남들은 못할 것 같은 생활이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편한 생활이고요 아주 유익한 생활이랍니다. 저는 이 새벽에 많은 일을 하거든요. 묵상도 해야 하고요, 아울러 새벽 묵상 글도 작성해서 발송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인터넷 방송 준비를 하면서 책을 읽고요, 새벽 6시에 인터넷 방송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완전히 꼬이는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바로 ‘재침’(다시 잠듬)을 하는 경우입니다.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2~3시 사이에는 꼭 일어납니다. 하지만 때로는 낮에 힘들게 일을 해서 그런지, 5분만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잠깐만 눈 감고 있다가 일어나야지’라는 마음을 갖고서 누워 있으면, 5분이 아니라 1~2시간을 그냥 잠들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과 같이 4시 30분에 일어나서 엄청나게 바쁜 하루의 시작을 여는 현상이 종종 일어납니다(이 구절을 보면, 제가 오늘 새벽 묵상 메일을 늦게 발송하는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재침해서 늦잠 잤습니다. ㅋㅋㅋ).
아마 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재침은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재침이라는 것은 자신과의 타협을 순간적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는 ‘내가 왜 또 잤을까?’하면서 꼭 후회를 합니다. 스스로가 결정을 했으면서 말이지요.
나의 순간적인 편함을 추구하는 타협으로 인해, 그 날 하루를 바쁘고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지 않아도 될 후회를 하는 어리석음도 갖게 되지요. 그런데 어쩌면 우리들이 짓고 있는 ‘죄’라는 것도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죄를 짓게 되는 주범은 바로 ‘나’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순간적으로 나의 편함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순간적으로 나를 남들 앞에 내세우고자 하는 마음에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당시에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만 지나도 우리들은 후회를 하게 됩니다. 결코 내게 진정한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거든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헛된 맹세로 인해서 세례자 요한을 죽이게 되지요(마태 14,1-12 참조). 물론 그 당시에는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서 스스로에게 타협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처럼 두려움에 떨게 되었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기쁘고 즐겁게 생활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런 세상을 거부하고는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는 세상보다는 나 혼자만 누리는 세상을 먼저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후회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요…….
이제 후회할 짓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대신 주님과 우리 모두 함께 누리는 그 행복을 좇아서 생활하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재침하지 맙시다.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라(리차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에서...) 마음을 혼란시키는 내적 갈등의 대부분은, 인생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과 지금과는 다른 식으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인생이 항상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러한 경우는 무척 드문게 현실이다. 인생이 어떠해야 한다고 미리 결정하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기회와는 점점 멀어진다. 게다가 위대한 깨달음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현실의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아이들의 불평이나 배우자의 반대 의견에 부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마음을 열고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들이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이 대범한 인간임을 과시하기 위해 불평과 반대, 혹은 실패를 즐기는 척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초월하여,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일상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마음을 여는 법을 터득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괴롭혔던 많은 문제들이 더 이상 골치 아픈 존재가 아닌 것이다. 마음의 눈이 더욱 깊고 투명해진다.
인생은 전투가 될 수도, 혹은 자신이 공 노릇을 하는 탁구 시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순간에 충실하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만족한다면 따뜻하고 평화로운 감정이 찾아들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소한 문제들에 이 방법을 적용해 보라.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좀더 중요한 일들에까지 점점 넓혀 나가라.
이것은 삶이라는 높고 험난한 산을 오르는데 실로 강력한 힘이 되어 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