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9,22) -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2004. 9. 22. 오후 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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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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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잠언 30,5-9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진실하시다. 그는 당신께 의지하는 사람에게 방패가 되신다. 그의 말씀에 아무것도 더 보태지 마라. 거짓말쟁이라고 꾸지람을 들으리라.
저에게는 당신께 간청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을 제 생전에 이루어 주십시오. 허황된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십시오. 먹고 살 만큼만 주십시오.
배부른 김에, "주님이 다 뭐냐?" 하며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하여 하느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복음 루가 9,1-6
그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한자리에 불러 모든 마귀를 제어하는 권세와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병자를 고쳐주라고 보내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 지팡이나 식량 자루나 빵이나 돈은 물론, 여벌 내의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든 그 동네를 떠나라. 떠날 때에는 그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로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려라."
열두 제자는 길을 떠나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며 이르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 주었다.





며칠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코카와 고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강아지 말이지요. 그런데 이 강아지들은 너무나 순하고요, 아울러 사람들을 잘 따르기에 순례객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하더니, 정말로 그런 것 같네.’ 라는 생각을 했지요.

지난 주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곳 성지에 한 600명 정도의 순례객이 방문을 하셨는데요, 사람들이 저의 강아지들이 귀엽다고 계속 쓰다듬어 주시고 아이들은 서로 강아지들을 안아보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귀여움을 한 2시간 정도 받던 저의 강아지 중에서 ‘고지’가 이상한 증세를 보입니다. 글쎄 구석에 가서 잠만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흔들어 깨어도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강아지가 어디 아픈 것 같다고 하면서 걱정을 해주시더군요. 저 역시 걱정이 되더군요. 그렇게 활달한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라는 생각도 들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성지를 떠나면서 고지가 다시 예전의 활달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피곤한 모습을 보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던 것이지요. 물론 사람들은 강아지들이 귀엽다고 만지고 있었지만, 강아지를 만지는 사람은 다수이고 강아지는 두 마리밖에 되지 않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한 강아지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 제가 예쁘다고(그럴 리는 없겠지만) 두 시간 이상을 계속 쓰다듬는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돌려가면서 저를 안는다면 또 어떨까요? 그리고 이것 맛있다고 계속해서 제 입에 넣어준다면 어떨까요?

아마 저 역시 구석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긴 사람 만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지요. 그런데 만나는 것을 넘어서서 만짐까지 당하니 얼마나 힘들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니, ‘개 팔자가 상팔자’는 아닌 것 같더군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 실제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사랑하신다는 그 제자들에게 너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세상에 나갈 때 고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무책임하게 파견하신다는 생각까지 갖게 됩니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 지팡이나 식량 자루나 빵이나 돈은 물론, 여벌 내의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사랑하는 제자라면 좋은 쪽으로 특별대우를 해주실 것 같은데, 오히려 나쁜 쪽으로 특별대우를 해주십니다. 즉, 사랑한다면 한 푼이라도 더 얹어 주고, 옷도 여유 있게 넣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 법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처럼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면서 대충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시련까지도 주심으로써 우리를 더 나은 쪽으로 이끌어주는 진정한 사랑을 선택하신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은 주님께 원망을 하지만요.

제가 직접 키우는 강아지의 입장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저인데요, 하물며 저를 키우는 주님의 입장을 어떻게 제대로 알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끊임없이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는 저의 욕심은 멈추지를 않네요.

오늘은 주님의 입장을 헤아리도록 묵상을 좀 길게 해봐야겠습니다.


동물을 사랑합시다.



칭찬의 비밀(‘행복한 동행’ 중에서)

누구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은 그 사람 안에 나를 심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가르치려 하는 사람보다 칭찬하는 이들을 더 깊이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습관화된 칭찬은 상대를 나약하게 만들어 좋지 않습니다.

칭찬이란 상대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찾는, 하나의 아름다운 발견이어야 합니다.

칭찬이란 그 사람을 향한 나의 애타는 노력의 결과이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기쁨과 아픔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에게 있는 기쁨의 비밀을 자꾸 찾아내고 싶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칭찬입니다.

댓글 1

  • 2004년 9월 23일 오전 8:16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는데...아이들에게 눈을 맞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하는것...그것이 소년레지오 단원들에게 건네주는 나름대로의 사랑과 관심법 이랍니다.칭찬과격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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