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09,24) -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2004. 9. 24. 오후 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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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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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전도서 3,1-11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 죽을 때가 있으면 살릴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애곡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다. 연장을 쓸 때가 있으면 써서 안 될 때가 있고 서로 껴안을 때가 있으면 그만 둘 때가 있다.
모아들일 때가 있으면 없앨 때가 있고 건사할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으면 기울 때가 있고 입을 열 때가 있으면 입을 다물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싸움이 일어날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그러니 사람이 애써 수고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시키신 일을 생각해 보았더니,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셨더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을 주셨지만,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복음 루가 9,18-22
어느 날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시다가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대개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마는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다시 물으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같은 교도소에 갇힌 두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손바닥 만하게 난 창으로 하루 종일 바깥을 내다보며 살고 있었지요.

한 죄수의 눈에는 늘 견고한 콘크리트 벽만 보였고, 다른 죄수의 눈에는 그 벽 너머에 있는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별이 보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두 죄수가 형기를 마치고 같은 날 나란히 교도소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갇혀서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늘 꿈을 키우던 사람은 그 뒤 열심히 일해서 훌륭한 사업가가 되었고요, 반대로 차가운 콘크리트 벽만 바라보던 사람은 지난번보다 더 큰 죄를 짓고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왔다고 합니다.

네모난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보면, 그 하늘은 네모의 모양이 됩니다. 하지만 탁 트인 언덕 위에서 하늘을 보면 어떨까요?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되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이 세상이 희망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반대로 절망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상태가 바로 내 일생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내 일생뿐만이 아니라, 남의 일생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 집세 문제로 비관 끝에 가족 3명과 동반 자살을 한 가정의 공개된 유서가 인터넷을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버지 때의 가난이 내게 물려지고, 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질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는 언제 그치려나? 내 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집세도 마련 못하는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전에도 이 글을 통해서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현재라는 시간만을 선물로 주셨지, 미래라는 시간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즉, 미래라는 시간은 주님께 맡겨진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면서 현재에서 주님을 체험하면서 기쁘게 생활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그 걱정으로 인해 현재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주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미래를 다 알고 계셨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모습을 늘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당신의 미래를 예언하시지요.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내가 어떻게 죽는지를 안다면, 또한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잘 아는 상황에서도 현재에 충실해질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지금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하십니다.

이미 미래에 대해 다 아셔도 현재에 늘 충실한 주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오지 않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하나도 알 지 못하면서, 우리들은 그토록 현재에 무관심할까요? 대신 걱정과 절망으로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미래에 대한 괜한 걱정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희망을 걸고서 생활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주님께서 주신 현재라는 선물을 보다 더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알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맙시다.



가난 속의 풍요로움(좋은 글)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너무 부유한 생활에만 익숙해 있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진정한 인생을 알기 위해서는 가난도 알아야 할텐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난을 알려주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가난한 어느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 집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길을 떠나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지? 말해 보거라.”

“정말 좋았어요, 아버지.”

“오 그래? 그거 참 다행이구나.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보았겠지?”

“그럼요.”

“그래서 무엇을 느꼈지?”

“우선 말이에요. 우리 집에는 개가 한 마리뿐인데 그 집에는 네 마리나 있었어요. 우리 집 풀장은 정원 중간까지인데 그들에게는 끝도 없이 넓은 호수가 있었어요.”

아버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아들의 이야기에 깜짝 놀라고 있었지만 아들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집 정원에는 몇 개의 램프가 서 있지만 그들에게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있었어요. 우리 집의 마당은 담장까지가 전부인데 그 사람들의 뜰은 지평성이 닫는 곳까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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