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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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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페소 4,1-7.11-13 형제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각각 다른 은총을 알맞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 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9,9-13 그때에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어제는 서울에서 회의가 있어서 미사가 끝난 뒤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장시간에 걸친 회의를 마치고 다시 강화로 내려오기 위해서 신촌의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지요.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글쎄 지갑 안에 돈이 없는 것입니다. 지갑 안에 들어있는 것은 도서상품권 4장, 천 원짜리 3장뿐이었지요.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백 원짜리 2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차표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촌에서 제가 차를 세워둔 통진까지의 차비는 3,300원이거든요. 즉, 100원이 부족했습니다.
터미널에 있는 사람에게 “저, 차비가 없어서 그런데 100원만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힘들더군요. 괜히 체면이 깎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따라서 카드가 있으니까 현금인출기를 찾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신촌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는 은행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은행을 찾아서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걷는 과정 안에서 계속 땅 바닥만 쳐다보았지요. 혹시 길거리에 떨어진 100원이 없나 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그렇게 흔한 100원도 막상 필요할 때는 없더군요. 결국 한참을 걸어야 비로소 은행을 찾을 수가 있었고요, 그곳에서 돈을 인출해서 버스 차표를 구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100원. 요즘에는 무척이나 작은 돈이라고 생각하는 돈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돈이지요. 하찮은 돈, 그래서 무시했었던 하나의 동전인데, 이 돈이 없기에 차에 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이제는 그렇게 보이지를 않네요. 이 동전 역시 무척이나 귀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맞아요. 우리들은 작은 것들을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용 용도는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단지 나의 무시함으로 인해 그 귀중한 사용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태오 복음 사가 축일을 맞이해서 오늘의 복음은 마태오 복음 사가를 부르는 장면을 들려줍니다. 그 당시에 세리는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요? 가장 천대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비록 돈을 만지는 직업이기에 부유한 생활을 하기는 했겠지만, 사람들의 무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또 하나의 소외를 체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앞에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모두가 무시하고 천대했던 상황에서 예수님만이 그를 인정해주십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족과 전 재산을 버리고 자신을 알아주는 주님을 따랐던 것이지요.
우리들은 얼마나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고 있는가요? 혹시 어떤 사람에게는 무시와 천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야말로 주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선택했다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따지겠습니까?
그 누구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창조물인 것은 그 어떤 것도 의미 없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100원에 따라서 버스를 타기도 하고 못타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판단 하나가 주님의 나라에 가기도 하고 못가기도 할 것입니다.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가슴으로 느껴라(헬렌 켈러) 태양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대의 그림자를 못 보리라.
고개를 숙이지 말라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라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라.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불구자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된다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