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6.17) -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2005. 6. 17. 오전 8: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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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제1독서 고린토 2서 11,18.21ㄴ-30
형제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속된 것들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으니 나도 자랑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물론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라 치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까?
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는 그들보다 낫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제쳐 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 내가 구태여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


복음 마태오 6,19-23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 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 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며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 마음의 빛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2주 동안 여행을 다녀온 뒤, 저는 계속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밀렸고, 따라서 하루 하루를 정말로 정신없이 보내야만 했습니다. 특히 야외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밀렸답니다. 잡초도 깎아야 하고, 곳곳에 쓸려 내려간 흙도 채워 넣어야 하고, 화단도 가꾸어야 합니다. 이렇다보니 좀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더군요. 즉, 비가 내려서 밖의 일을 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새벽의 일입니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 제가 기뻐했을까요? 그 동안 제가 기다리던 비였으니 기뻐했을 것 같지만, 사실 어제 아침에는 그렇게 기쁘지를 않았답니다. 아니, 오히려 ‘왜 비가 오는거야?’라는 마음이 들었지요. 왜 이렇게 마음이 변했을까요?

그저께 저는 큰 맘 먹고 자전거 한 대를 샀습니다. 전에 타던 자전거는 너무나 무겁고, 기어 조절도 잘 되지를 않아서 새로 구입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그저께 저녁, 드디어 제가 원했던 자전거를 구입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자전거를 구입한 뒤에 어떻겠어요? 빨리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음 날 이 자전거를 타고서 해안 도로를 달리면 얼마나 신날까 라는 생각이 가득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밖에 비가 오고 있으니 얼마나 실망을 했을까요? 비록 밖의 일을 잠시 쉴 수 있도록 하는 비가 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어제 새벽만큼은 그 비가 그렇게 야속하게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창밖을 보니, 하느님께서 저의 아쉬움을 보셨는지 하늘이 어느새 맑아져 있더군요.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와~~ 자전거를 탈 수 있겠구나.’ 그래서 어제 아침, 저는 자전거를 타고서 해안도로를 통해 성지까지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시작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하는데, 미사 후에는 날이 더워지면서 약간씩 힘이 듭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이 이렇게 바뀌네요.

‘비 좀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그 순간, 쓴 웃음이 나오더군요. 언제는 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또 언제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저의 모습 때문에 말입니다. 즉, 저는 저 편한 대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저의 경험을 통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손이 가까이 닿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지요. 제 마음 상태에 따라 비가 오는 것이 좋을 때도 있고 또 반대로 비가 오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가 있는 것처럼, 이 세상 것에 마음을 둘 수도 있고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둘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고는 하늘나라에 우리들의 마음이 있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나요?


하늘나라에 우리들의 마음이 있을 수 있도록 주님을 한번이라도 더 생각합시다.



토인비의 청어 이야기

세계적 역사가 토인비박사가 즐겨 하던 이야기이다.

북쪽 바다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먼 거리의 런던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운반하는가의 문제였다.

어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해 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 있었다. 그러나 꼭 한 어부의 청어만은 싱싱하게 산채로 있는 것이었다.

이상히 여긴 동료 어부들이 그 이유를 물어 보았으나 그 어부는 좀채로 그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침내 동료들의 강요에 못이긴 어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청어를 넣은 통에다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그러자 동료 어부들이 놀라 물었다.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습니까?”

어부는 말했다.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놈은 청어를 두 세마리 밖에 못 잡아먹지요. 하지만 그 통안에 있는 수백 마리의 청어들은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들은 살기 위해 열심히 헤엄치고 도망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먼길 후에 런던에 도착해 봐도 청어들은 여전히 살아 싱싱합니다.”

메기로부터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청어들을 건강하게 살아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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