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고린토 2서 3,4-11 형제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 자신에게서 났다고 내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자격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새로운 계약을 이행하게 하셨을 따름입니다. 이 계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율법은 석판에 새겨진 문자로서 결국 죽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에 비록 잠시 동안이기는 하였지만 그 얼굴에는 너무나 찬란한 광채가 빛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감히 그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이 문자의 심부름꾼도 그렇게 영광스러웠다면 성령의 심부름꾼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사람을 단죄하는 일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사람을 무죄 석방하는 일에는 얼마나 더 큰 영광이 있겠습니까? 과연 지금의 이 영광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이 영광에 비긴다면 과거의 그 영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깐 있다 없어질 것도 빛났다면 영원히 계속될 것은 얼마나 더 찬란하게 빛나겠습니까? .
복음 마태오 5,17-19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
이 글은 2004년 6월 9일 새벽을 열며 묵상 글입니다.
며칠 전에 저는 김포에 위치하고 있는 홈플러스에서 구두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전에 신고 있었던 신발은 너무나 불편했거든요. 밑창이 딱딱하고 신발 크기도 약간 커서, 이 구두를 신고 있으면 발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편한 구두를 하나 사서 신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우연히 홈플러스의 구두 파는 곳을 지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편한 구두를 찾아보았지요. 그런데 하나의 구두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그 구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발명 특허”
이 구두 밑창에는 숨구멍이 달려있어서, 더욱 더 편한 느낌을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밑창을 눌러보니 푹신푹신한 것이 정말로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구입했지요. 특히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가격이 무척 쌌거든요.
그런데……. 지금 현재 저는 후회를 하고 있답니다. 물론 푹신푹신한 밑창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걸을 때마나 밑창에 달려 있는 숨구멍으로부터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나는 ‘푝~ 푝~’ 소리는 저로 하여금 더욱 더 조심하게 걷게 만드네요.
지금 현재 저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서 판단하고 구입한 저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면서 제대로 알기 위해 더욱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경우도 있지만, 우리들의 삶 안에서 제대로 알지 못해서 하는 실수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섣부른 판단을 함으로써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사실 나는 분명히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사실은 틀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지요. 그래서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설득시키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또 하나의 죄를 이 세상 안에 만드는 것이지요.
예수님에 살던 시대에 많은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먹보요, 술주정뱅이요, 죄인들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이런 평가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거나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평가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는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어왔었는데,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나 고개를 돌려 하느님 나라의 실제를 보게 되고, 하느님의 초대에 제대로 응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 높은 사람이나 종과 같은 귀천의 차별이 없이, 누구나 하느님 식탁에 평등하게 앉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이란 바로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자유를 얽어매고 구속하는 율법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이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밝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이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계명 자체에만 의미를 두었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알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나요? 또한 내가 만나는 이웃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노력은 어떠합니까?
단순히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지금 나의 판단이 진정으로 사랑의 완성을 위한 판단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 즉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충동구매를 하지 맙시다.
향기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거나 탐스러운 과일이 달린 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길이 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기 때문일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 이치로 아름답고 향기나는 사람에게 사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좀 손해보더라도 상대를위해 아량을 베푸는 너그러운 사람.
그래서 언제나 은은한 향기가 풍겨져 나오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함께 있고 싶어집니다.
그 향기가 온전히 내 몸과 마음을 적시어 질수 있도록, 그리하여 나 또한 그 향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스치듯 찾아와서 떠나지 않고 늘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고 소란피우며 요란하게 다가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쩍 떠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리없이, 조용히, 믿음직스럽게 그러나 가끔 입에 쓴 약처럼 듣기는 거북해도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해 주는 친구들이 있고 귓가에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고개를 돌려버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머물러 있습니까?
있을 땐 잘 몰라도 없으면 표가 나는 사람들, 순간 아찔하게 사람을 매혹시키거나 하지는 않지만 늘 언제봐도 좋은 얼굴, 넉넉한 웃음을 가진 친구들, 그렇게 편안하고 믿을 만한 친구들을 몇 이나 곁에 두고 계십니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가깝고 편안한 존재인지 그러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싶습니다.
두드러지는 존재, 으뜸인 존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보아도 물리지 않는 느낌, 늘 친근하고 스스럼 없는 상대, 그런 친구들을 곁에 둘 수 있었으면, 그리고 나 또한 남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