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6.07) -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2005. 6. 7. 오전 7:58:37

글자
2005년 6월 7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제1독서 고린토 2서 1,8-22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진실성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여러분에게 한 내 약속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바노와 디모테오와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언제나 진실이 있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우리를 굳세게 해 주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맡겨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확인해 주셨고 그것을 보증하는 표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복음 마태오 5,13-16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에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이 글은 2003년 6월 10일 새벽을 열며 묵상 글입니다.

어느날 어떤 여인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100살까지 산다!!"

이 말에 이 여인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흐뭇했지요. 그래서 이 여인은 곧바로 성형외과 병원에 갔습니다. 왜냐하면 오래 살 것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예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말로 이상하게도 이 여인은 성형수술을 한 바로 그 날에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여인은 하느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따지기 시작했지요.

"하느님,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100살까지 산다면서요? 그런데.. 저는 지금 20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죽었죠? 왜 거짓말을 하셨어요?"

이 여인의 말을 모두 들으신 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간단히 답변을 하셨다고 합니다.

"못 알아봤다!"

성형수술로 인해 고친 얼굴로 인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이지요.

이 아침 한번 크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행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행동으로 인해서 그 행복을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 말입니다. 바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느님께만 원망을 드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기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바로 앞선 이야기밖에 하실 말씀이 없을 것 같지 않습니까?

"못 알아봤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먼저 소금은 소금으로서의 독특한 맛을 내야 합니다. 즉, 짠맛을 내야만 소금이지, 달거나 쓰다면 소금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금의 이 짠맛은 음식의 맛을 내주고, 부패를 막아주며, 맛있는 발효식품을 만들어주지요. 하지만 소금이 소금의 짠맛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소금은 짠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녹기 때문에 음식에 맛을 더해주는 것이지요. 즉, 소금은 녹아야만 제대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지요.

또한 빛의 모습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빛이라는 것은 밝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밝음만이 본래의 역할은 아닙니다. 밝음만이 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면, 밤에 우리에게 밝음을 주는 전기불로도 충분한 것이지요. 낮의 태양빛이 의미가 있는 것은 모든 이에게 따뜻하게 비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이런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짠맛만 가지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삶 안에 녹아드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홀로 밝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비추어야만 주님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는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한 몫을 우리들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모습의 우리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우리들을 직접 창조하신 주님인데, 주님조차도 우리들을 못 알아보게 된 것은 아닌지요?

"못 알아봤다."

이 말씀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도록 더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특별 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맛있는 식사를 합시다.



진정한 행복(세네카)

진정한 행복은
미래를 바라보며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즐기는 것이다.

그 미래는 희망적이든 절망적이든
오게 되어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며 편히 쉬어야 한다.

그리고 욕심이 없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의 손길이 닿는 범위 안에 있다.

지혜로운 자는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자기의 운명에 만족하며
자기가 갖지 못한 그 어떤 것도 소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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