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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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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스바니야 3,14-17 수도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큰 소리로 외쳐라. 수도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축제를 베풀어라. 주님께서 원수들을 쫓으셨다. 너를 벌하던 자들을 몰아내셨다. 이스라엘의 임금, 주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니, 다시는 화를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그날이 오면, 예루살렘에 이렇게 일러 주어라. “시온아, 두려워 마라. 기운을 내어라. 너를 구해 내신 용사 네 주 하느님께서 네 안에 계신다.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복음 루가 1,39-56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배 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 글은 2003년 5월 31일 새벽을 열며 묵상 글입니다.
어느 여행자가 유명한 수도자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자는 놀랍게도 아주 허름한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으며, 방 안에 있는 가구라고는 책상과 의자가 전부인 것이었습니다.
여행자는 수도자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조금 망설이다가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의 가구는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수도자가 곧바로 이렇게 되물었답니다.
"손님, 당신의 가구도 역시 여기에 없지 않습니까?"
여행자는 어의가 없었지요. 하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이렇게 말했지요.
"아~~, 물론 제 가구는 여기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곳에 다니러 온 나그네일 뿐이니까요."
그러자 수도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이 세상에 다니러 온 나그네이지요."
이 수도자의 말씀따라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다니러 온 나그네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는 많은 재물이 있으며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호령할 수 있는 명예가 있다고 한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것들은 과연 어떤 의미가 될까요? 오히려 세상은 사랑과 선행을 남기고 떠난 나그네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즉, 비록 많은 재물과 큰 명예가 있더라도, 자신을 위해서 힘쓴 사람을 세상은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글을 쓰기 위해서 달력을 보니 놀랍게도 오늘이 벌써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리고 5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내 자신은 얼마나 세상의 나그네로써 의미있게 살아왔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세상의 주인인양 교만하게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요?
복음에서 성모님은 자신은 보잘 것이 없지만, 자신을 통해서 하느님이 이룩하신 일은 위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좋은 일은 내가 훌륭해서 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반대로 나쁜 일은 하느님이 잘못해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교만이 나를 착각 속에 빠뜨려서, 내가 불행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얼마 전,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하시는 어느 한 원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정의를 이 세상 안에서 외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단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 안에서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정의로워야 하기 때문이지. 즉, 다른 사람보다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흠이 없이 살아야 큰 소리로 정의를 외칠 수 있는 것이거든..."
정의를 외치려면, 내가 먼저 정의로워야 합니다. 사랑을 외치려면, 내가 먼저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평화를 외치려면, 내가 먼저 평화로워야 합니다. 기쁨을 외치려면, 내가 먼저 기뻐야 합니다. 내가 하지 않고 말만 하는 것... 그것처럼 공허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의, 사랑, 평화, 기쁨 등... 우리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힘주어 외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먼저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이런 단어들을 자주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사는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나의 그 모습을 보고서 그 단어들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끼고 있는지요?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분위기 있는 곳에서 최소한 1시간 데이트를 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말들을 합시다.
인생의 향기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산업자들은 발칸산맥의 장미를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에서 새벽2시에 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미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향기도 가장 극심한 고통중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절망과 고통의 밤에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합니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 본 사람만이 별빛이 아름답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이여, 영혼의 향기는 고난중에 발산된다는 사실을 묵상해 봅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