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출애굽기 34,4ㄴ-6.8-9 그 무렵 모세는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 때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모세 옆에 서시어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셨다. 주님께서 그의 앞을 지나가시며 외치셨다. “나는 주 하느님이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모세는 얼른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드셨으면, 부디 주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십시오. 이 백성이 고집이 센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저지른 죄와 실수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길이 당신의 것으로 삼아 주십시오.”
제2독서 고린토 1서 13,11-13 형제 여러분,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며 내 권고를 귀담아들으십시오. 그리고 뜻을 같이하여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셔 주실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복음 요한 3,16-18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중학교에 아주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성격 때문인지 친구들은 이 아이를 만만하게 보았고, 그래서 이 아이를 시간만 나면 괴롭혔습니다. 때리고 찌르고 치고……. 6개월간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 하루는 이제까지 누적된 불만이 최고조로 도달했고 마침내 뇌관에 불이 붙은 모양으로 그 아이 중에서 리더 격인 아이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이 씨, 도저히 못 참겠다. 한번 붙자.”
반 친구들이 모두 구경을 하는 상황에서 싸움이 이루어졌지요. 그런데 싸움이 끝나고 이긴 아이가 서서 쓰러진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그 서 있는 아이가 바로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기고도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아~ 차라리 이제까지 센 놈한테 맞고 있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저런 바보 같이 허약한 놈한테 자그마치 6개월 동안 당하고 있었다니…….’
우리들은 이 아이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겁부터 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용기를 내어서 해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을 괜히 그런 겁을 먹었다고 말을 하곤 하지요.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는 판단이 얼마나 나를 위축시키고 있는지를, 즉 나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어리석은 판단뿐만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주님께 대해서도 어리석은 판단을 우리는 하게 됩니다. “왜 나에게는 저 사람과 같은 능력을 주시지 않습니까? 저 역시 저 사람처럼 잘난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당신께서는 저 사람만을 위해서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이런 생각들로써 주님과 나의 관계를 더욱 더 멀게 하고, 결국 냉담자라는 굴레 속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크신 주님의 뜻을 유한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교회력으로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각기 다른 위격을 가지고 있지만 한 몸을 이룬다."라는 뜻이지요. 솔직히 이 말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이신 하느님인데, 또 세 분이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세분이 또 한 분이라는 것. 정말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이 안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삼위일체의 신비는 우리를 위한 것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들에게 계속 전달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그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뜻을 따라 무상으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베푸셨지요. 이제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인류 역사 안에 그 베푸심을 계속해 나가고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사랑을 전해 주시기 위해 성격이 다른 세 위격이 하나가 되는 신비가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인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주님께 불평 담긴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주님의 그 사랑을 계속해서 바라볼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위해 서로 다른 세 위격이 하나를 이루듯이, 서로 다른 우리들 역시 주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삼위일체의 신비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위축시키는 판단은 이제 그만~~~
포기하지 말라(손인춘 「세상을 뒤엎는 리더십」에서) "99가지는 다 해도 1가지만은 하지 말라. 그것은 포기하는 일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면 결국에는 실패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나는 이렇게 인내하는 방법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처음 한방 비누를 6개월 동안 단 한 장도 팔지 못했을 때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든 코에 넣은 생콩이 익도록 노력하라."
이게 무슨 말인가? 어떻게 코에 넣은 생콩이 익을 수 있겠는가? 이는 열심히 일하다 보면 코에서 뜨거운 콧바람이 나오는 경우를 빗대어 한 말이다. 코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으로 생콩이 익을 만큼 열심히 일하라는 얘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