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5.11) - 부활 제7주간 수요일

2005. 5. 11. 오전 8: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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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1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0,28-38
그 무렵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 주신 양 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면 사나운 이리 떼가 여러분 가운데 들어와 양 떼를 마구 헤칠 것이며 여러분 가운데서도 진리를 그르치는 말을 하며 신도들을 이탈시켜 자기를 따르라고 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깨어 있으시오. 그리고 내가 삼 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각 사람에게 쉬지 않고 훈계하던 것을 잊지 마시오. 나는 이제 하느님과 그의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완전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으며 모든 성도들과 함께 유산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나의 이 두 손으로 일해서 장만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도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명심하도록 언제나 본을 보여 왔습니다.” 바오로는 이 말을 마치고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들은 모두 많이 울었으며 바오로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이었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에까지 전송하였다.


복음 요한 17,11ㄴ-19
그때에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이 사람들을 지켰습니다. 그동안에 오직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아직 세상에 있으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사람들이 내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데 세상은 이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 주시는 일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임종 직전에 이렇게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죽기 전에 말해 둘 것이 있소. 양복점 주인은 나에게 2백만 원을 빚졌고, 푸줏간 주인은 50만 원을 빚졌고, 옆집 아저씨는 내게 3백만 원의 빚이 있소.”

그의 아내는 자식들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습니다.

“자, 보거라, 너희 아버지가 얼마나 놀라운 양반이냐, 죽어 가면서까지 누구에게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여보, 슈퍼마켓 아저씨에게는 1백만 원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기 바라오.”

그 말에 아내가 소리칩니다.

“오오, 너희 아버지가 드디어 헛소리를 시작하시는구나.”

우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얻고자 합니다. 즉, 자기에게 이득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간직한 채, 이 세상 안에서 우리들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고 합니다. 하지만 과연 혼자서 살 수 있을까요? 또한 혼자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요?

지금 제가 있는 성지에서는 저와 여사무장, 이렇게 둘이서 모든 일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밖의 일, 즉 성지의 관리 일은 제가 모두 맡아서 합니다. 화장실 청소, 쓰레기 줍기, 흙 나르기, 돌 줍고 나르기, 나무 심기, 풀 뽑고 베기, 농약 뿌리기……. 이밖에도 많은 일들이 성지로 출근하자마자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감을 느낍니다. 특히 요즘에는 성지 마당에 있는 ‘마사토’를 퍼서 흙이 부족한 부분으로 나르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신부님께서 이것까지 직접 하세요?”

성지가 본당이 아니기에 본당 신자가 있을 리도 없고요, 또한 아직 사람을 고용할 만큼 성지가 넉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하고 있지요. 그런데 저 역시 누군가와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답니다. 한 명만 더 있어도 분명히 지금의 세 배 이상의 효과를 보일텐데, 자금상의 문제로 혼자 하고 있을 뿐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정말로 많이 느낀 것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것이 더 속편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지만, 그것은 순간입니다. 즉, 그 순간만 내 마음이 편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오는 것 같지만, 함께 할 때 더 큰 이득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신 것이 아닐까요? 바로 하느님의 일이 세배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오길 바라면서 말이지요.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다면 하나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방법은 쉬운 방법과 어려운 방법이 있답니다.

어려운 방법은 상대가 나에게 맞추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아니라, 둘로 셋으로 바뀔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다면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상대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확실히 하나 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나가 되시겠습니까? 어려운 방법? 쉬운 방법?


하나 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시다.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흐른다(류영국)

물은 합치려는 의지로 흐른다.
돌부리에서, 가랑잎 틈새에서 스며 나온 물은
흐르다가 바윗등이 줄기를 갈라놓으면 옆으로 비켜서 만나고
둑을 쌓아 막으면 틈새로 새어 나와 다시 만난다.
그렇게 만나고 합쳐서 강이 되어 흐르고
강물은 다시 합쳐 바다에서 하나로 된다.

물소리는 서로가 그리워서 울부짖는 외침이다.
그리움 끝에 만난 물줄기인지라 포구에 다 와서는
웃음 짓는 만월을 띄우고 흐른다.

물의 여정은 하나로 되어 가는 과정이다.
나뭇가지는 자라면서 갈라지지만 물은 갈수록 합쳐진다.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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