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5.01) - 부활 제6주일 가해

2005. 5. 1. 오전 8:11:57

글자
2005년 5월 1일 부활 제6주일 가해

제1독서 사도행전 8,5-8.14-17
그 무렵 필립보는 사마리아의 한 도시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군중들은 필립보의 말을 듣고 또 그가 행하는 기적을 보고는 모두 하나같이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악령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들과 불구자들이 깨끗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리로 보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로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은 받지 못했던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그들도 성령을 받게 되었다.


제2독서 베드로 1서 3,15-18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그러나 답변을 할 때에는 부드러운 태도로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사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헐뜯던 자들이 바로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낫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몸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습니다.


복음 요한 14,15-21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기어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겠지만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터이니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





요즘 갑곶성지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에 영화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강화에는 극장이 없거든요. 따라서 문화생활을 위해 영화 한편을 보려고 해도 김포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사시는 분들을 위해서, 또한 이곳에 오시는 순례객들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지난주부터 영화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상영했었던 영화는 ‘마더 데레사’였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던 마더 데레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였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 제 자신 안에서 큰 반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수녀님께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실천하는 실천가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타협에도 절대 굽히지 않고 주님의 뜻을 이 세상에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셨지요.

또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늘 기도로써 그 해결을 찾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시지요.

“나는 주님 안의 몽땅 연필일 뿐입니다. 그리고 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1997년 9월5일 캘커타에서 87세를 일기로 선종하기 전까지 평생을 빈자들을 위해 헌신한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임종을 앞둔 순간에도 '가난한 이들과 똑같이 대해달라'며 값비싼 치료를 거부하셨다고 하지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러한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사랑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말을 했으면서도 불구하고, 내가 얼마나 그 사랑을 실천했었는가 라는 반성을 해봅니다.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입으로만 실천하는 사랑, 그 사랑이 얼마나 공허한 말로만 머물렀을까요? 주님께서 주신 그 귀한 계명이 내 안에서는 하나의 단어 정도로만 취급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주님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주신 계명, 즉 사랑의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사랑의 계명은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자기만 부자가 되면 그만이고, 자기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일까요?

사랑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삶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어떤 이유 없이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것, 그것 역시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이러한 사랑을 평생 실천했으며, 현재라는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사랑하라.”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랑하십시오.



아주 특별한 실험

어떤 사람이 한 달 동안 아주 특별한 실험을 했습니다. 어떤 마을의 일정한 구역에 있는 각 집에 매일 만원 씩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준 다음 그 결과를 관찰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날, 집집마다 들러서 현관에 만원을 놓고 나오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하는 행동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멈칫멈칫 나와서 그 돈을 집어갔습니다.

둘째 날도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셋째 날, 넷째 날이 되자 그 동네는 만원 씩을 선물로 주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두 번째 주쯤 되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현관 입구에까지 나와 돈을 나눠주는 사람이 오는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언제쯤 올 것인가 기다리게 되었고, 그 소문은 이웃마을에까지 퍼졌습니다.

세 번째 주쯤 되자, 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이상한 사람이 와서 돈을 주는 것을 신기하거나 고맙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넷째 주가 되었을 때쯤은 매일 만원 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 끼 밥 먹고 세수하고 출근하는 것 같은 일상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드디어 실험기간이 끝나는 한 달의 맨 마지막 날, 그 실험을 계획했던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그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냥 그 골목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나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을 거칠게 열고 현관까지 나와서 성난 목소리로, "우리 돈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왜 오늘은 내 돈 만원을 안 주는 겁니까?" 라고 따져 묻기까지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매일 만원을 받는 일은 어느새 당연한 권리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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