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4.25) -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2005. 4. 25. 오전 8:45:41

글자
2005년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사도행전 5,5ㄴ-14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섬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 낮추어 하느님의 권능에 복종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아시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교우들도 같은 고난을 다 당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잠깐 동안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에게 당신의 영원한 영광을 주시려고 불러 주신 하느님 곧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하게 하여 주시고 든든히 세워 주시고 힘을 주시고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권세를 누리실 분이십니다. 아멘.
나는 진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바노의 손을 빌려 여러분에게 간단히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격려하는 한편 하느님의 참된 은총이 어떤 것인가를 증언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으니 흔들리지 마십시오.
바빌론에 있는 여러분의 자매 교회와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여러분은 사랑의 입맞춤으로써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복음 요한 16,15-20
그때에 [예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될 것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도 쫓아내고 여러 가지 기이한 언어로 말도 하고 뱀을 쥐거나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며 또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다 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사방으로 나가 이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셨으며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전한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다.





매리라는 이름의 여인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여인은 아기를 낳은 후 친정 부모님 댁에서 보름을 보냈지요. 어느 날 여인은 친정어머니에게 아기의 머리가 붉은색은 것은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모두 금발이기 때문이었지요. 이 말에 친정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매리야, 네 아버지 머리가 붉은색인 걸 잊었니?”

이 말을 들은 매리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엄마, 그건 말도 안돼요. 난 입양아잖아요.”

어머니는 잠시 미소를 짓고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씀하세요.

“그걸 내가 자꾸 잊는구나.”

매리는 어머니가 그때처럼 사랑스러운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더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친딸처럼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하려고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이지요. 그 감사의 마음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어쩌면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우리들은 종종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사람을 이용하고, 그 사람에게 피해 가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느냐면서 비판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받은 그 사랑에 대해서 보답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까? 아니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라는 말을 뱉으면서 사랑을 받든 말든 상관없이 나를 위해서만 최선을 다하는가요?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는 이러한 룰(Rule)이 어느 정도 잘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는 전혀 그 룰(Rule)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세세한 것까지도 신경 써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세상 안에서 잘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얼마나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사는지요? 오히려 감사보다는 원망과 미움의 감정을 가지고서 주님을 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매리의 친정어머니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들.... 얼마나 배은망덕한 모습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기 직전, 마지막 유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인간사회에서도 보통 마지막 유언의 말씀이라면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 사람이 못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에게 그 큰 사랑을 주시는 주님의 유언인데 우리들은 얼마나 그 말씀을 따르고 있는지요?

이제 주님의 유언을 잊지 말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기부금을 내고 싶습니다...

어느 노부부가 하버드 대학의 총장인 찰스 앨리엇을 찾아갔다.

“우리는 전쟁에서 죽은 아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싶습니다.”

총장은 노부부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부유함이나 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총장은 그들이 내놓으려는 장학금이 적은 액수일 것이라고 여기고, 일부러 바쁜 척했다. 총장의 무례한 태도에 그들은 재산을 하버드 대학에 기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실 노부부는 철도 사업으로 큰 돈을 번 부자였다. 게다가 남편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낸 릴랜드 스탠퍼드였다. 그들은 아들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품고 캘리포니아 남부로 갔다. 그곳에서 전 재산을 투자해 대학을 설립했다. 이 학교가 바로 ‘서부의 하버드’로 알려진 스탠퍼드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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