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4,17) - 부활 제4주일 가해

2005. 4. 17. 오전 8:42:08

글자
2005년 4월 17일 부활 제4주일 가해

제1독서 사도행전 2,14ㄱ.36-41
[오순절에,]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보고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그들을 설득시키고 이 사악한 세대가 받을 벌을 면하도록 하라고 권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날에 새로 신도가 된 사람은 삼천 명이나 되었다.


제2독서 베드로 1서 2,20ㄴ-25
사랑하는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으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 말씀에도 아무런 거짓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으며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대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살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매맞고 상처를 입으신 덕택으로 여러분의 상처는 나았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길 잃은 양처럼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복음 요한 10,1-10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이다. 양 치는 목자는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 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양 떼를 불러 낸 다음에 목자는 앞장서 간다. 양 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간다.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해 주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어느 화창한 봄날. 각양각색의 치장을 한 아동들이 선생님의 인솔 하에 소풍을 갔습니다. 호젓한 산속에 이르자 선생님은 아동들에게 몇 가지 주의를 주고는 "지금부터 자유시간이니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볼 때까지 모두 즐겁게 놀아요." 하고 해산시켰습니다. 아동들은 제철을 만난 메뚜기마냥 날뛰었습니다. 부부놀이를 하는 아이, 병정놀이를 하는 아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느닷없이 뛰어들어 방해를 놓는 아이, 또는 짝을 찾아서 친구의 흉을 보며 낄낄대는 아이 등, 별별 놀이의 잔치가 다 벌어졌습니다.

이윽고 정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된 것입니다. 선생님의 호루라기는 깨가 쏟아지듯 재미있게 놀던 아이들의 귀를 때렸습니다. 순간, 아이들은 놀이를 중단하고 모두 선생님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게 놀려고 선생님을 피하여 멀리 갔던 아이들은 호루라기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선생님은 이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고, 찾은 뒤에는 이 아이들은 선생님께 크게 혼났지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자유 시간을 주었던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즉, 지금 현재라는 시간에 자유롭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잘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선생님을 피해 멀리 갔던 아이처럼, 우리들도 하느님의 눈길을 피하여 멀리 갔다가 하느님의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느님의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면 분명히 그 목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 하느님의 뜻과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의 성소주일입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성소를 단순히 사제나 수도 성소로만 한정을 지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나 수도원으로 가서 재미있게 놀고, 신학생과 수사 수녀님들의 말씀을 듣고, 사제나 수도 성소를 위해서 기도하면 성소주일을 잘 지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분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소주일은 우리 모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각자가 받은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날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각자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 안에 하느님의 뜻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요? 그리고 하느님의 부르심, 사랑을 하라는 그 부르심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봅시다.



불가능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불가능,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사람들을 용기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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