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4,05) - 부활 제2주간 화요일

2005. 4. 5. 오전 8: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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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4월 5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4,32-37
많은 신도들이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사람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인 바르나바라고 불리는 요셉도 자기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바쳤다.


복음 요한 3,7ㄱ.8-15
그때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새로 나야 된다.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니고데모는 다시“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모르느냐?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희는 내가 이 세상 일을 말하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쇼팽이 한번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어떤 사람의 집에 억지로 끌려가 저녁 식사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식도 제대로 장만하지 않은 채 쇼팽을 초청한 그 사람은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피아노 연주를 한 곡 들려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쇼팽은 그의 무례한 태도에 속으로는 화를 삭이면서도 은근히 골탕 먹여 줄 생각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곳의 맨 끝 한 구절만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는 것입니다. 집 주인은 너무 짧아서 아쉬었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이니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합니다. “대단히 멋진 연주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곡인데 그렇게 짧죠?” 그러자 쇼팽이 모자를 챙겨 들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미안합니다. 이 집에서 그만큼밖에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집 주인은 멋진 연주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완성된 연주가 아니라 끝부분만 조금 치고 말은 잘못된 연주였던 것이지요. 바로 자신이 행했던 잘못된 모습들로 인해서 결국 스스로 골탕 먹는 일을 당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 착각하는 모습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쩌면 착각이라기보다는 겉모습만을 바라보고서 스스로 규정짓는 고정관념 때문은 아닐까 싶네요. 요즘 우리 사회는 학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못하면 그가 아무리 착하고 자비심이 많아도 인정을 해주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공부를 잘하면 그가 아무리 못되고 괴팍스러워도 그를 높이 평가해주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양한 달란트를 하느님께 받고 태어납니다. 다양한 능력과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고작 시험지 한 장에 그 능력을 묵살해 버리는 우리들의 모습, 어쩌면 하느님의 창조 의지를 배반하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제가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니, 가장 싫어했던 청소 장소는 화장실 청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심한 냄새를 풍기는 곳이기도 했지만, 주로 잘못을 저지르는 문제아가 벌로써 해야 하는 일이 화장실 청소였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제는 무슨 잘못을 했나 보다.”라고 오해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제가 갑곶성지로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바로 ‘화장실 청소’입니다. 학창시절에 제일하기 싫었던 일을 가장 먼저 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곳이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간직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좋아 보이는 것, 그리고 옳다고 하는 것이 실상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참으로 많은 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세속적으로 출세하고 똑똑한 니고데모가 영적으로는 얼마나 무식한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사실 예수님은 전문적인 공부를 했던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과외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부유한 부모를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못한 신분을 가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힘이 있었고, 사람들을 압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가 이해를 하지 못하자,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느냐?"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힘있는 말씀, 그리고 권위있는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단 한번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일을 결정할 때 하느님의 뜻을 물었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저희들도 당신처럼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세속적인 착각,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서, 성령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내 자신의 틀에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새롭게 태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들도 오늘 니고데모가 들었던 말을 똑같이 들을 것입니다. "너는 이런 것도 모르느냐?"


집 안의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합시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

# 질서에 관한 입장차이
차에 타고 있을 때는 늦게 가는 행인을 욕 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빵빵되는 운전사를 욕 한다.
남이 천천히 차를 몰면 소심운전이고, 내가 천천히 몰면 안전운전이다.
지하철에서 남은 조금만 양보해서 한자리 만들어 나를 앉게 해야 하고, 나는 한사람 더 끼면 불편하니까 계속 넓게 앉아가도 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남은 내가 탈때까지 열림단추를 계속 누르고 기다려야 하고, 나는 남이 타건말건 닫힘단추를 눌러서 얼른 올라가야 한다.

# 부부에 관한 입장차이
남의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공처가, 내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애처가
남의 아내가 못 생겼으면 '그 수준에서 여자를 골랐으니 당연하지.', 내 아내가 못 생겼으면 '짜샤, 내가 여자얼굴에는 워낙 초연 하잖냐.'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웃고, 남편이 죽으면 시집식구 몰래 조의금부터 헤아려 본다.
아내가 멋을 부리고 명품옷을 입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남편이 멋을 부리고 명품옷을 입으면 바람이 난 것이다.

# 자녀에 관한 입장차이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
남의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고, 내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자기 주장이 뚜렷해서이다.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내 아들이 처가에 자주 가는 일은 줏대없는 일이다.

# 사람의 몸에 관한 입장차이
남의 흰머리는 조기 노화의 탓, 내 흰머리는 지적 연륜의 탓.
남이 민소매를 입으면 `그래, 다 벗어라, 벗어.` 내가 민소매를 입으면 `어때, 시원해 보이지?`

# 식생활에 관한 입장차이
서구에서 개를 먹으면 야만인이고, 한국에서 개를 먹으면 마누라한테 칭찬 받는다.
남이 각자 음식값을 내자고 제안하는 것은 이기적인 사고방식이고, 내가 각자 음식값을 내자고 제안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남이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본적인 애국심조차 없는파렴치한 행위이고, 내가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담배를 맛없게 만드는 전매청에 대한 근엄한 경고이다.
남이 술자리에 자주 가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고, 내가 술자리에 자주 가는 것은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남이 술잔을 돌리는 것은 위생관념이 전혀 없는 것이고, 내가 술잔을 돌리는 것은 다정다감한 정을 나누자는 것이다.
집의 음식을 남기거나 버리면 낭비이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남기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고 남은 것을 가져가면 주책이다.
집에서는 맛없는 반찬도 다 먹어야 하지만, 음식점에서는 맛있는 반찬은 추가로 더 요청하고 맛없는 반찬은 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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