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4,01) - 부활 팔일축제 내 금요일

2005. 4. 1. 오전 10: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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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4월 1일 부활 팔일축제 내 금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4,1-12
[앉은뱅이가 치유받은 뒤]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있을 때 사제들과 성전 수위대장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들은 두 사도가 사람들을 가르치며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들어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선전하는 데 격분하여 그들을 붙잡았다. 그러나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감옥에 넣어 다음 날까지 가두어 두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수효는 장정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
그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 자리에는 대사제 안나스를 비롯하여 가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그 밖에 대사제 가문에 속한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두 사도를 앞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권한과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그때 성령으로 가득 찬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우리가 불구자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그가 어떻게 낫게 되었는가 하는 경위에 관해서 심문을 하는데 불구자였던 저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바로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힘입어 된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입니다. 여러분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 예수는 집 짓는 사람들, 곧 여러분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복음 요한 21,1-14
그때에 예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는데 그 경위는 이러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는 토마스와 갈릴래아 가나 사람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과 그 밖의 두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으나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이튿날 날이 밝아 올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을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들이 예수께서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걸려들었다.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시몬 베드로는 몸에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에 뛰어들었다. 나머지 제자들은 고기가 잔뜩 걸려든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다.
그들이 들어갔던 곳은 육지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빵도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시몬 베드로는 배에 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렸다. 그물 속에는 백쉰세 마리나 되는 큰 고기가 가득히 들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도 그물은 터지지 않았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감히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 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 주셨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것이 세 번째였다.





여러분들, 혹시 내가복음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루가복음이 아니라, 내가복음이라는 복음이 우리 교우들 사이에서 요즘 퍼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뻥이라고요? 오늘 만우절이라서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분명히 내가복음이 있고, 이 내가복음은 우리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많이 퍼져있습니다. 그 내가복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성서 말씀을 그대로 보아야 하는데 자기 관점, 자기 입장에서만 읽어 자기 마음대로 뜯어 맞춰 해석하는 것.”

어때요? 자기 입장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주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이 드러나는데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복음’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운동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스포츠 경기를 중계할 때이면 꼭 텔레비전을 보곤 했지요(물론 지금은 텔레비전 자체를 없앴기 때문에 볼 수가 없네요).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운동 경기는 농구입니다. 그런데 이 농구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곤 합니다.

한 선수가 공격해오는 상대편 선수를 막으려 하다가 상대 선수의 팔을 칩니다. 파울입니다. 그래서 심판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파울을 선언했습니다. 그 순간 반칙을 한 선수는 심판에게 다가가 자신이 언제 반칙을 했냐면서 격렬한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의 작은 화면으로 보아도 파울이 분명한데, 그 선수는 자신이 행한 행동을 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지요. 바로 상대편 선수를 막아야 한다는 것에만 온 생각이 집중되어 있기에 자신이 한 행동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느 한 곳에 몰두하면서 매달리는 것, 특히 자신에게 매달리는 ‘내가복음’을 충실히 따를 때, 우리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들이 옳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옳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래 직업으로 돌아갑니다. 그 중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몇몇의 제자들은 다시 어부의 길을 걷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판단을 내리고서 자기 살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 역시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밤새 고기잡이를 했지만, 단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지요. 그 순간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한 제자들은 엄청난 고기를 낚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주님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내가복음’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판단될 때가 있지만, 주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성서속의 ‘복음’말씀을 따르지 않고서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합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 복음을 따르고 있나요? 이제 내 안에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던 ‘내가복음’은 쓰레기통에 던져야 하겠습니다.


만우절입니다. 약간의 거짓말이 허용되는 날이지요. 하지만 만우절이라도 112, 119에 장난전화는 하지 맙시다.



고통은 기쁨의 한 부분(정용철, ‘좋은생각’ 중에서)

금붕어는 어항 안에서 3천 개 정도의 알을 낳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1만 개 정도 낳습니다.
열대어는 어항 속에 자기들끼리 두면
비실비실하다 죽어버리지만
천적과 같이 두면 힘차게 살아갑니다.

호도와 밤은 서로 부딪혀야 풍성한 열매를 맺고,
보리는 겨울을 지나지 않으면
잎만 무성할 뿐 알곡이 들어차지 않습니다.

태풍이 지나가야 바다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져야 대기가 깨끗해집니다.

평탄하고 기름진 땅보다 절벽이나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꽃이 더 향기롭고,
늘 따뜻한 곳에서 자란 나무보다
모진 추위를 견딘 나무가 더 푸릅니다.

고통은 기쁨의 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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