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22) - 성주간 화요일

2005. 3. 22. 오전 8: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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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2일 성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 49,1-6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부족들아, 정신차려 들어라. 주님께서 태중에 있는 나를 이미 부르셨고, 내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에 이미 이름을 지어 주셨다. 내 입을 칼처럼 날세우셨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날카로운 화살처럼 나를 벼리시어, 당신의 화살통에 꽂아 두시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그러나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헛수고만 하였다. 공연히 힘만 빼었다." 그런데도 주님만은 나를 바로 알아 주시고, 나의 하느님만은 나의 품삯을 셈해 주신다. 주님께서 나를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신다. 야곱을 당신께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태중에 지어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주님께서 이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으로서 할 일은,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


복음 요한 13,21-33.36-38
그때에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어] 몹시 번민하시며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 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하고 내놓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누구를 가리켜서 하시는 말씀인지를 몰라 서로 쳐다보았다.
그때 제자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곁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눈짓을 하며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께 바싹 다가앉으며 "주님, 그게 누굽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셨다. 그리고는 빵을 적셔서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아먹자마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왜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러는 예수께서 유다에게 명절에 쓸 물건을 사오라고 하셨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신 줄로만 알았다. 유다는 빵을 받은 뒤에 곧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유다가 나간 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아니, 이제 곧 주실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 일찍이 유다인들에게 말한 대로 이제 너희에게도 말하거니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내가 가는 곳으로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장담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새벽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지금 성지는 공사 중입니다. 그러다보니 성지를 방문하시는 분께 진심으로 죄송할 따름이지요. 물론 성지의 외적인 부분을 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지 안에 있는 성당을 리모델링하는 것인데 워낙 건드리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성지 전체를 공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아무튼 깨끗한 성지의 모습은 아니지만, 리모델링이 끝난 뒤에 예쁘고 멋진 모습을 상상하면서 조금만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성당이 너무나 작아서 빨리 공사를 해야지 하면서도 금전적인 부분 때문에 공사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꽃피는 봄이 오면 순례객들의 수도 더 많이 늘어날 것이고, 지금의 성당 크기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금전적인 많은 제약이 있지만, 빚을 내면서까지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시작하자마자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성당의 제대 부분의 벽이 공사 시작과 함께 무너진 것입니다. 일부러 그 벽을 부순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만약 미사를 하다가 그 벽이 무너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지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저 순교 하는 건가요?

또한 천장의 텍스를 뜯고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쎄 천장의 텍스 안에는 수많은 전선들이 가득했는데, 누전이 되었는지 전선들 중의 일부가 새까맣게 탄 것입니다. 만약 누전으로 인해서 불이 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단순히 오시는 순례객들이 넓고 깨끗한 공간에서 미사와 조배를 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사를 시작한 것이었는데, 바로 저를 위한 공사가 되었네요. 즉, 만약 공사를 하지 않았으면 조만간 신문 지상에 제 이름이 이렇게 나올 뻔 했다는 것이지요.

“갑곶순교성지의 신부. 미사 하다가 갑자기 벽이 무너져서 그 밑에 깔리다. 천벌 받은 것은 아닌지…….”

“갑곶순교성지. 화재 발생. 화재원인은 누전으로 인한 듯……. 성지 이래도 좋은가?”

아무튼 이러한 기사가 나가지 않도록 해주신 주님, 그리고 이토록 저를 사랑해주시는 주님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런데 이토록 큰 사랑으로써 다가오시는 주님에 비해서 저는 얼마나 불충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보기에 너무나 흉한 이기심과 더불어, 낮출 줄 모르는 교만, 세상의 것에 집착하는 모습들…….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만 골라서 하는 듯한 제 모습에 주님 앞에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리옷 사람 유다처럼, 또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장담하는 시몬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저의 모습이 너무나도 흉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담담히 저희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시고 베풀어주시는 주님……. 그분께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더 이상 주님을 팔아 넘겨서는 안 됩니다. 또한 주님 앞에서 헛된 맹세를 해서도 안 됩니다. 대신 주님처럼 조용히 사랑을 실천해야 나가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특히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을 계속 이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요?


아주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여 봅시다.



모든 것은 하나부터 시작합니다(탁닉한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中에서)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번의 웃음이 우울함을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희망이 당신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한 번의 손길이 당신의 마음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 하 수 있고,
한 번의 악수가 영혼에 기운을 줄 수 있습니다.

한 송이 꽂이 꿈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가슴이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삶이 세상에 차이를 가져다 줍니다.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고,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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