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23) - 성주간 수요일

2005. 3. 23. 오전 9: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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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5년 3월 23일 성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야 50,4-9ᄀ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 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나의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어, 차돌처럼 내 얼굴빛 변치 않는다.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하느님께서 나의 죄 없음을 알아 주시고 옆에 계시는데, 누가 나를 걸어 송사하랴? 법정으로 가자. 누가 나와 시비를 가리려느냐? 겨루어 보자.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나를 도와주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그르다고 하느냐?


복음 요한 26,14-15
그때에 열두 제자의 하나인 가리옷 사람 유다가 대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당신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 하자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 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선생님께서 드실 과월절 음식을 어디에다 차렸으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일러 주셨다. "성 안에 들어가면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을 터이니 그 사람더러 '우리 선생님께서 자기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며 제자들과 함께 댁에서 과월절을 지내시겠다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제자들은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과월절 준비를 하였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같이 음식을 나누시면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 바로 나를 배반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로 가겠지만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그때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나서서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하고 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은 네 말이다."





‘도루묵’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마 이 말이 왜 생겼는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그 사연을 적어 봅니다.

조선 중엽 인조가 왕위에 있을 때, 오랑캐의 침공을 받습니다. 인조는 오랑캐가 한양 근처까지 내려오자 안전을 위해 궁궐을 벗어나 몽진을 떠나게 됩니다.

몽진 생활이 길어지자 미리 준비했던 식량들도 거의 바닥이 나서 먹는 것조차 형편이 말이 아니었지요. 그러던 중 그 마을의 어부 하나가 직접 잡은 것이라면서 생선을 진상했습니다. 임금은 요리장에게 어부가 가져온 생선을 요리해보도록 지시했지요. 잠시 후 대충 구색을 갖춘 수라상이 들어왔습니다. 인조는 제일 먼저 생선살을 한 점 떼어 입에 넣습니다. 생선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혀 끝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것이 전에 먹어본 그 어떤 생선의 맛과도 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임금은 즉시 어부를 불러 생선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어부는 그 생선을 ‘묵’이라 부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부의 이 말에 임금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묵이라 부르다니 안 될 말이다. 앞으로 이 생선을 ‘은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라고 지시했습니다.

전란이 끝나고 궁으로 돌아온 임금은 이내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고, 다시 궐내의 지리한 생활이 계속되자 점점 식욕도 없어지고 입맛을 잃어갔지요. 요리장이 갖가지 요리들을 만들어 수라상을 차렸어도 임금의 입맛은 좀체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인조는 문득 몽진 시절 먹었던 은어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즉시 요리장을 불러 은어를 요리해오도록 지시했지요.

드디어 은어가 상에 올려졌고, 임금은 예전의 그 맛을 떠올리며 상에 오른 은어 살을 한 점 떼어 입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 맛이 그렇게 형편없을 수가 없었어요. 임금은 요리장을 불러 분명 그 생선이 은어가 맞느냐고 물었고, 요리장은 은어가 분명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데요.

“은어는 무슨 은어, 그냥 도루 ‘묵’이라고 불러라.”

이렇게 해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의 생선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네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그 마음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즉, 어렵고 힘들 때에 느꼈던 감사의 마음이, 편하고 쉬운 시절에는 무관심의 마음으로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쉽게 바뀌는 마음은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자주 보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주시는 주님의 큰 사랑을 보고서 우리들은 이런 식으로 다짐합니다.

‘주님,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도 이토록 큰 사랑을 주시는군요. 그 사랑을 보면서 이제 다짐합니다. 당신만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제 당신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너무나 쉽게 이 다짐을 자주 어기지요. 세속의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어기고,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서 어깁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유다의 배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처음 제자가 되었을 때에도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가졌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제자들보다도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의 것에 관심을 가졌고, 이 세상의 것에 예수님을 팔아버립니다. 그리고는 뻔뻔한 모습까지도 보입니다.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우리들의 마음 역시 하루에 수도 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유다처럼 뻔뻔하게 주님께 ‘주님, 저는 당신을 배반하지 않겠지요?’라는 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유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세상의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주님께 헛된 맹세를 하지 맙시다.



세상을 바꾸는 관심(‘세상을 바꾸는 작은 관심’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단어는
“내가 정말 잘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합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단어는
“당신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네 단어는
“당신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요?” 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는
“당신에게 이것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단어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한 단어는
“우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한 단어는
“나”라고 합니다.

이 글처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단어를 실천하고 살아간다면,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산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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