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3,29) - 부활 팔일축제 내 화요일

2005. 3. 29. 오전 8: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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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9일 부활 팔일축제 내 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36-41
[오순절 날에,]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그들을 설득시키고 이 사악한 세대가 받을 벌을 면하도록 하라고 권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날에 새로 신도가 된 사람은 삼천 명이나 되었다.


복음 요한 20,11-18
그때에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셨다. 그러나 그 분이 예수인 줄은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 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 주셔요. 내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뽀니!” 하고 불렀다.(이 말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하고 일러 주셨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 주신 말씀을 전하였다.





어제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긴 시장에 간지가 상당히 오래된 것 같더군요. 그래서 곧바로 강화읍내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사는데, 어렸을 때의 추억을 되살리는 음식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닭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시장에 가면 닭의 다리와 날개 부분을 따로 판매를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쫓아서 시장에 가게 되면 닭다리 또는 날개를 하나씩 얻어먹을 수가 있었지요.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갑자기 그 닭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닭다리는 2000원, 닭 날개는 1500원이랍니다. 저는 닭 날개 두 마리를 산다고 말하면서, 삼천 원을 주인 앞에서 세어서 드렸습니다. 그리고 닭을 튀기는 동안,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지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에 그 닭 집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닭을 받아서 뒤를 도는 순간, 주인아저씨가 갑자기 저를 불러 세웁니다.

“아저씨~~ 아까 닭 값을 주실 때 1000원을 더 주셨어요.”

“아닌데요? 제가 아저씨 앞에서 돈을 세어서 드렸잖아요?”

“아마 돈 사이에 1000원이 더 끼어 들어온 것 같네요... 아무튼 1000원이 더 왔으니 여기 가져가세요.”

결국 저는 1000원을 받아서 그 가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면서 너무나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아저씨 앞에서 돈을 꺼내서 직접 드렸기 때문에 저는 3000원을 드렸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역시 그 모습을 직접 보셨기 때문에 제게 1000원을 되돌려 주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영업이익을 1000원 더 올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아저씨는 정직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짜로 생기는 이익 1000원을 포기했지요.

1000원. 요즘에는 이 1000원 가지고 구입할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작은 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를 통해서 따뜻한 마음을 갖게 했던 이 1000원이라는 돈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갖게 하는 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 뵙지 못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어쩌면 죽은 사람은 살아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 뵙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 역시 세속적인 마음으로 생긴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내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했을 때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약간의 이익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팔면서까지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한 행동 하나 하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힘들다고 말하면서 기쁨 속에서 살지 못하는 것이지요.

주님을 뵙는 사람은 이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비록 세상의 눈에는 힘들고 어려워 보이는 삶을 살고 있어도, 그들은 늘 기쁨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뵙고 주님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점보다는 주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성당에 가보자는 말이라도 해봅시다.



진정한 강함(정용철, ‘행복한 동행’ 중에서)

사람들이 왜 강하게 보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덮기 위해서
더 강한 말과 모습을 하는데
그것이 힘들어 보일 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나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 좋습니다。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름답고,
슬프다고 말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우리 마음은
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진정한 강함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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