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4,22) - 부활 제4주간 금요일

2005. 4. 22. 오전 9:57:13

글자
2005년 4월 22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비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형제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방인 형제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지도자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단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안식일마다 읽는 예언서의 말씀을 성취시켰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를 죽일 만한 아무런 근거도 찾지 못했지만 빌라도를 졸라서 예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그분에 관한 모든 기록이 다 이루어진 뒤에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모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 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같이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지금 우리 백성들 앞에서 예수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기쁜 소식을 여러분에게 전하러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다시 살리셔서 자녀 된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제이편에도,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복음 요한 14,1-6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유명한 ‘허시파피’라는 신발회사가 한 때는 망할 위기에 처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욕의 몇몇 히피족들이 그 신발을 신고 다니면서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의 백화점을 휩쓸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별로 인기가 없었던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탁’하고 터지는 극점이 있는데요, 이 순간을 가리켜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합니다.

1950년 일본의 미야자키 현 고지마라는 무인도에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는데, 주로 고구마를 먹고 살았습니다. 원숭이들은 고구마를 뽑아 흙을 손으로 털어내고 먹었는데 어느 날 한살 반짜리 젊은 원숭이 한마리가 강물에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이 하나 둘 흉내 내기 시작했고, 이 고구마를 씻어먹는 행위가 새로운 행동양식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고지마 섬 이외 지역의 원숭이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서로 접촉도,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신호를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정보가 흘러가더라는 것입니다.

연구결과, 그 종족에 도움이 되는 어떤 발전이 일어나면, 그것이 그 무리 전체에 퍼지는데, 그 퍼진 수가 100 마리가 되면, 거리나 공간에 관계없이 전 종족에게 퍼지더라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가리켜 <100 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동물학자와 심리학자가 여러 가지 실험을 한 결과, 이 학설은 원숭이 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나 조류, 곤충류 등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구조는 ‘깨달은 10%의 사람’에 의해 바뀐다고 하지요. 그래서 먼저 10%의 사람이 깨닫게 되면 사회가 바뀌고, 10%의 나라가 바뀌면 세계가 바뀌어 지게 된다고 우리는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깨달은 10%의 사람’도 처음에는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시작이 아주 미미해 보였지만,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10%가 되기까지 답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 10%가 되었을 때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즉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는 극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티핑 포인트에 이르기 전에 포기해 버린다고 합니다. 시작이 미미하다고, 나 혼자서 어떻게 그것을 하냐고, 나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면서 우리들은 너무나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하지만 그 티핑 포인트가 바로 한 사람을 통해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작은 것을 작다고 하지 않고 또한 희망을 가지고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갖추어 나갈 때 그 티핑 포인트가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으로써 희망을 우리 각자에게 주십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굳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뿌리는 그 첫 시작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희망을 간직하고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마련하신 이 세상 안에서 힘차게 살았으면 합니다. 바로 나를 통해 티핑 포인트는 시작됩니다.


자신감을 가집시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보다 깊은 감사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아닙니다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냥두면 스스로 지나가는 시간
그세월을 혼자 인고 하고팠지요

외로움에 떨며 보낸 불면의 밤들이
인내가 아닌 습관일 즈음
어느날 운명으로
귀인이 나무숲을 헤집고 다가왔습니다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난 차마 사랑이라 부르기를 거부하고
감사라고 깊디깊게 불러 봅니다

사랑보다 깊은 감사...
하늘아래 이런 사연이 또 있을까
아닙니다 존재 하지 않습니다

사랑한다 라는 말 보다
진실로
고마움의 노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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