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5.09) - 부활 제7주간 월요일

2005. 5. 9. 오전 8:49:25

글자
2005년 5월 9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9,1-8
아폴로가 고린토에 머물러 있는 동안 바오로는 북부 지방을 거쳐 에페소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몇몇 신도들을 만나 “당신들이 신도가 되었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조차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바오로가 “그러면 당신들은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하고 다시 묻자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때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일러 주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한 표시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분 곧 예수를 믿으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바오로가 그들에게 손을 얹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러자 그들은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고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을 드나들며 대담하게 증언하고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도 하고 알아듣도록 설명도 해 주었다.


복음 요한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지금은 주님께서 조금도 비유를 쓰지 않으시고 정말 명백하게 말씀하시니 따로 여쭈어 볼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제야 믿느냐? 그러나 이제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제각기 자기 갈 곳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아니 그때는 이미 왔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가 내게서 평화를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경찰이 차가 하나도 없는 한적한 국도에서 너무 느리게 달리는 차를 정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차 안을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운전을 하고 다른 세 분은 뒷좌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었어요. 경찰은 주의를 주었지요.

"할머니, 여기서는 그렇게 느리게 달리면 안 돼요."

할머니는 자신이 잘못이 없다는듯이 말씀을 하십니다.

“아니, 도로에 20이라고 써 있는데 뭐... 난 잘못한 것 없어.”

경찰은 웃으면서 말했지요.

“할머니, 그건 20번 국도라는 표시에요. 시속 20Km/h로 달리라는 것이 아니에요. 이곳은 시속 80Km/h 로 달리는 곳이에요. 그런데 뒤에 계신 할머니들은 어디 편찮으세요? 아까부터 얼굴이 안 좋아 보이네요.”

경찰에 이 물음에 뒤에 앉아 계신 할머니 한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응, 조금 전엔 210번 국도를 달렸거든..."

이 할머니께서는 표지판을 잘못 봤던 것이지요. 즉, 몇 번 국도라고 되어있는 표지판을 시속 몇 Km/h로 달려야 한다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210번 국도에서는 몇 Km/h로 달린 것이지요? 210Km/h로 달렸기 때문에 뒤에 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모두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운전을 잘한다는 것은 차를 움직인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교통법규를 포함해서 운전을 하는 모든 제반 사항을 제대로 알아야 운전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어느 한 부분만을 잘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어느 한 부분만 행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지요.

특히 주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의 단 한 번의 기도로써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들. 만약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님을 원망하는 성급함들. 그리고 주저앉아서 포기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들. 어떻게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들 각자는 이런 모습을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희망의 말씀을 주시지요. 그 말씀은 오늘 복음의 말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착각과 원망 속에서 포기하는 우리들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부족한 저희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용기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제는 내 안에 간직하고 있는 착각들을 버리고, 주님을 원망하였던 죄스러움에 대해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포기로 쓰러져있던 내 몸을 다시금 일으켜 용기를 주시는 희망의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행복은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다시 몸을 일으켜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통 표지를 잘 지키도록 합시다.



항상 기쁜 마음을 간직하라

기쁨이 삶에 있어서 제일의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삶의 욕구이며 삶의 힘이며
또 다시 삶의 힘이며
또 다시 삶의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쁜 마음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슬픔도 분노도 그 어떠한 고뇌도 기쁨의 용광로에선 모두 용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쁨의 넓이로 말하자면 온누리에 차고,
잘기로 말하자면 겨자씨보다도 더 작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괴테가 말했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기쁨은 언제나 혼자 있기를 거부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즐겨한다.

슬픔이 혼자이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그 슬픔을 나누어 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기쁨이 함께이기를 원하는 것은 그 아름다운 기쁨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세찬 바람과 성난 빗줄기가 분노와 슬픔의 다른 모습이라면
맑게 개인 날씨와 밝은 바람은 기쁨과 즐거움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기쁜 마음속에선 슬픔이 자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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