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5.13) - 부활 제7주간 금요일

2005. 5. 13. 오전 8: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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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3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5,13ㄴ-21
그 무렵 아그리빠 왕과 베르니게가 가이사리아에 와서 페스도를 예방하였다. 그들이 거기서 며칠 머물러 있는 동안 페스도는 바오로의 사건을 왕에게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펠릭스가 나에게 인계한 죄수가 한 사람 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유다인의 대사제들과 원로들이 그 사람을 고발하면서 단죄해 달라고 합디다. 그러나 나는 우리 로마의 관례로는 피고에게 원고 앞에서 고발에 대하여 항변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를 넘겨주는 법이 없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유다인들이 여기에까지 나를 따라왔으므로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 다음 날로 법정을 열고 그 사람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원고들이 일어서서 그에 대한 죄목을 늘어놓았지만 내가 예측했던 죄목은 하나도 없었고 다만 자기네 종교와 죽은 예수라는 사람을 두고 서로 의견을 달리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그 예수가 살아 있다고 주장합디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까 망설이다가 바오로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판결을 받을 때까지 그대로 갇혀 있게 해 달라고 하기에 나는 그를 카이사르에게 보내게 될 때까지 그대로 가두어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복음 요한 21,15-19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조반을 드신 후,]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이어서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인지를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성인이라고 불릴 만큼 열심히 기도하는 어떤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몇 시간씩 기도하는 일을 수십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지요. 어느 날 그의 정성에 감동을 한 하느님께서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 순간 그는 마침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요.

하느님께서는 그 형제님의 뒤에 서서 마침 기도를 하는 그의 어깨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손을 얹었습니다. 그 순간 그 형제님께서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며 소리칩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요? 나는 지금 기도를 하고 있으니 나를 방해하지 마시오!”

결국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단 한 마디 말도 못하고 그에게서 떠나가셨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 분명히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 안에 하느님을 맞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다면,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긴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또한 이 기도를 통해서 본인이 원하는 것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이 이 기도 안에 없다면, 그 모든 기도는 단순히 입 안에서 맴도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면서 시몬 베드로에게 세 차례에 걸쳐 당부를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제자들 중의 으뜸인 시몬 베드로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 각자는 바로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숨을 받아서 창조되었습니다(창세기 참조). 그렇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또 다른 하느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가 될까요? 바로 “또 다른 하느님인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런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단순히 나 혼자만 기도하면 그만이라는 착각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기도하는 그 모습을 기특하게 여겨서 어깨를 잡아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도를 방해한다고 오히려 짜증과 화를 냄으로써 주님을 쫓아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기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마음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는 주님 말씀의 실천은 기도뿐만이 아니라, 실제 손으로 만지면서 갖게 되는 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2가지 이상의 선행을 실천합시다.



지금 당장 하라!(릭 워렌)

우리 모두는 지금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게 됩니다.

1단계: "이번에는 조금 일찍 시작할거야" (희망적)
2단계: "빨리 시작해야만 하는데." (약간의 긴장상태)
3단계: "나는 조금 더 서둘러서 시작했어야만 했는데." (잠재해 있는 죄책감)
4단계: "아니야, 아직 그것을 할 만한 시간이 남아있어." (그릇된 재확신)
5단계: "도대체 뭐가 잘못된거지?" (절망적인 상태)
6단계: "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강도높은 고통)
7단계: "그냥 해치워 버려!" (끝내버리라!)
8단계: "다음번에는 꼭 일찌감치 시작할 거야." (이 싸이클이 반복된다)

지금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해를 끼칩니다. 이것은 불필요한 문제들을 야기시킵니다. 또한 기회, 시간, 그리고 돈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연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중독증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미루는 습관에 인이 박히게 되면 변화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결국 뒤로 미루는 습관은 삶의 방식이 되어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면 해결책이 없습니까?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제안합니다.

* 변명하기를 그만두라!
* 완벽주의는 일의 실행을 마비시킨다는 것을 기억하라.
* 두려움을 직면하라!
* 현재의 고통보다는 앞으로 얻어질 것에 초점을 맞추라.
* 지금 당장 하라!

당신은 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장에서, 집에서, 교회에서 무엇인가 미루어 오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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