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5.20) - 연중 제7주간 금요일

2005. 5. 20. 오전 8: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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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0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제1독서 집회서 6,5-17
부드러운 말은 친구를 많이 만들고, 상냥한 말은 친구들을 정답게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과 잘 사귀어라. 그러나 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는 한 사람만 택하여라.
친구를 사귈 때에는 먼저 그를 시험해 볼 일이다. 너무 서둘러 네 마음을 주지 마라. 어떤 친구는 자기에게 이익이 있을 때에만 우정을 보이고, 네가 불행하게 되면 너를 버린다.
어떤 친구는 원수로 변하여, 너와 싸우며 너의 숨은 약점을 공개한다. 또 어떤 친구는 너의 식탁에는 잘 와서 앉으나, 네가 불행하게 되면 너를 버린다.
네가 잘살 때는 네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네 하인들마저 마음대로 부리다가, 네가 망하게 되면 등을 돌려 네 앞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다.
원수들은 멀리하고 친구들도 경계하여라.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보화를 지닌 것과 같다. 성실한 친구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으며, 그 우정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의 신비한 약인데,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이런 친구를 얻을 수 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참된 벗을 만든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도 그처럼 참되게 대해 준다.


복음 마르코 10,1-12
예수께서 유다 지방과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들었으므로 늘 하시던 대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일렀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이 법을 제정해 준 것이다. 그런데 천지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집에 돌아와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습니다. 남자가 청혼을 하기 위해 여자네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지요.

“누구세요?” 안에서 예쁜 목소리가 들려왔지요.

“나요.”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나라니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군요. 돌아갔다가 준비가 되면 다시 오세요.”

얼마 후 청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이 누구냐고 물었고, 청년은 “당신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문이 열렸고, 그녀는 그의 청혼을 받아 들였답니다.

이번에는 처녀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기 위해 둘이서 처녀의 부모가 사는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 안에서 처녀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접니다.” 청년이 대답했지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군요. 준비가 되면 다시 오세요.” 라고 처녀의 어머니가 말했어요.

얼마 후 두 남녀가 다시 처녀의 부모가 사는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안에서 누구냐고 물어왔고요, 청년은 “당신의 딸과 저, 저희들입니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왔습니다.”라고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그제야 “어서 들어와요.” 라고 처녀의 부모는 말하면서 청년을 맞아들였답니다.

요즘 가정이 흔들린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OECD 국가 중에서 이혼율이 2위라는 영광을 얻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가정은 쉽게 이혼으로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습, 즉 늘 자기라는 기준으로만 판단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실 이혼은 그 남녀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혼으로 인해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 자녀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의 상실감’으로 인해서 각종 우울증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면서, 이 사회에서 힘든 삶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 즉 부모와 형제자매들 역시 그 이혼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혼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는 남성 중심이었기에,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으면 이혼할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음식을 태우는 것도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상태에서 여성의 인권은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커다란 소외를 체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불평등한 법을 예수님께서 찬성하셨을까요?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자기만을 위한 삶. 그 삶에는 분명히 다른 사람의 소외를 가져오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정을 우리는 ‘성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삶이 매일 행복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었지요. 분명히 예수님의 가정 역시 많은 고통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 전에 있었던 예수 잉태에 대한 문제들, 예루살렘에서 힘들게 예수님을 낳으셨을 때, 또한 이집트로 피난하실 때,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을 때……. 분명히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가정 안에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 가정인가요? 성가정이 된다는 것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없다면, 그 가정은 콩가루 집안이 되겠지요.

저는 어제 일을 하면서 많은 반성을 하였답니다. 특히 카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쉽게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렸던 저의 모습이 어쩌면 ‘나’라는 기준 안에서만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새벽 가족’이라고 감히 말하면서도, 저는 ‘가족’이라는 생각을 실제로는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분명히 소외되는 사람이 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보듬지 못하고 저만을 생각했던 모습들……. 어쩌면 2000년 전, 자신의 아내가 음식을 태웠다고 소박을 놓는 그 이기적인 이스라엘 남자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라는 부끄러운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 새벽 가족을 콩가루 집안으로 만드는데 선봉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새겨 봅니다. 이 말씀은 가정 안에서만 해당되는 말씀만은 아닙니다. 바로 나와 너가 만나서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이 세상 안에서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서로를 위해 끊임없는 배려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만을 생각했던, 저의 짧은 생각으로 그 동안 물의를 일으켰던 점,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모든 이들을 보듬는 ‘새벽 가족’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들에게 약속합니다. 여러분들도 조금만 더 사랑의 마음으로써 서로를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이 새벽 가족은 우리 인간들의 짧은 판단으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새벽님들을 위해 오늘 하루 지향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나눔(용혜원)

아이는 태어나면서
세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울고, 쥐고, 발버둥치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평생 바로 이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아십니까?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돈과 명예와 권세를 쥐려 하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날마다 발버둥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놓으라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일을 기억하겠다고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욕심만 더해가며 사는
사람과 나눔의 삶을 사는 사람은
얼굴 모습과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신경질적이고,
나누며 사는 사람에게는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웃음이 있습니다.

소중한 삶에 욕심만 채우기보다
나눔의 손길을 채우며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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