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집회서 4,12-22 지혜는 어미처럼 자녀를 키워 주고,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보살펴 준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삶을 사랑하며, 지혜를 찾아 부지런한 사람은 기쁨으로 가득 차리라. 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은 주님의 영광을 이어받겠고, 그가 사는 곳에 주님의 축복이 항상 있으리라. 지혜를 경건하게 섬기는 것은 거룩하신 분을 섬기는 것이며,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공정하게 다스릴 것이며, 지혜를 따르는 사람의 삶은 안전하리라. 지혜를 믿는 사람은 지혜를 차지할 것이며, 그의 후손들도 지혜를 물려받으리라. 지혜는 처음에 그를 험난한 길로 인도한다. 그를 믿게 될 때까지 법으로 그를 시험하여, 무서운 공포심을 안겨 주고 규율로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지혜는 마침내 그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여 기쁨을 주고, 자신의 오묘함을 밝혀 주리라. 만일 사람이 지혜의 길을 빗나가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멸망의 손에 내맡기리라.
복음 마르코 9,38-40 그때에 요한이 예수께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말리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정원에서 잔디를 깎고 나무와 화초에 물을 주면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을 학창시절 영화 안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집에는 그렇게 넓은 잔디밭도 없고, 그렇게 많은 나무와 화초도 없었거든요. 따라서 저렇게 정원을 꾸미면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요.
그런데 지금 제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나무와 화초에 물주고, 잡초 뽑고, 잔디 깎고……. 분명히 영화 속에서는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실제로 제가 그렇게 살아보니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생각보다는 바쁘고 힘들다는 생각만이 자리 잡게 되더군요.
정원을 꾸미는 일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정원 꾸미는 것을 또 하나의 행복한 장면으로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내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도 있듯이, 그냥 앞 뒤 재지 않고 남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였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2001년부터 홈페이지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운영하면서 가장 저를 화나게 했던 일은 남에 대해서 쉽게 판단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의 기준은 항상 자신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옳고, 남은 틀리다는 생각들……. 그러면서 말씀하시는 것은 ‘정의’입니다. 하지만 사랑 없는 정의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따라서 ‘사랑’은 없고 ‘정의’라는 허울만을 뒤집어 쓴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온다면, 지금의 카페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글을 쓴다고 한들, 그 글이 담겨있는 글을 통해서 싸움이 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서 공개적으로 말씀드립니다. 만약 그런 글들이 계속 올라온다면, 카페를 폐쇄하는 것은 물론 200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새벽을 열며’ 묵상 글도 멈추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면 그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요…….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특히 요한이 그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지 말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말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을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의원들도 못 고치는 병을 말 한마디에, 그리고 손을 대기만 해도 고칠 수 있는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대고, 일하는 것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일을 하시는 분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었지요. 그런데 제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도 이런 착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나요?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판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그 판단 안에 사랑이 있는지를 다시금 따져 봅시다. 만약 미움이 있다면, 그 판단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지향하셨던 사랑 가득한 세상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말들 우리가 해야 할 말은 ,힘을 내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힘이 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해 보도록 하세요. 그러면 당신도 힘을 얻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걱정이 사라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들려 주세요. 그러면 당신도 걱정이 줄어들 테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용기를 잃지 마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용기가 생겨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속삭이세요. 그러면 당신도 용기를 얻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조건없이 ,용서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감격하거든요. 그러면 당신도 용서를 받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따사롭고 환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또렷하게 해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감사를 받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아름다워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따사롭고 환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소근거리세요. 그러면 당신도 아름다워지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사랑해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사랑이 깊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하셔야 해요. 그러면 당신도 사랑을 받게 될 테니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