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5.28) - 연중 제8주간 토요일

2005. 5. 28. 오전 10:15:52

글자
2005년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토요일

제1독서 집회서 51,17-21
당신께 감사드리고 찬양하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옵니다.
내가 젊어서 아직도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나는 지혜를 얻으려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나는 지성소 앞에 나아가 지혜를 찾아 기도하기도 하였고, 내 마지막 날까지 계속하여 지혜를 찾아다닐 것이다. 꽃이 피면서 포도 알이 익음과 같이, 내 마음은 지혜 안에서 기쁨을 맛보았다.
내 발은 곧은길을 밟았으며, 젊었을 때부터 줄곧 지혜를 쫓아다녔다. 나는 귀를 기울여 지혜의 소리를 들었고, 그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지혜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나에게 지혜를 주신 분께 영광을 드린다. 나는 지혜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하였으며, 선한 일을 열렬히 추구하였으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마음은 지혜를 차지하려고 싸웠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나는 팔을 펼쳐 하늘을 우러러보며, 지혜를 모르는 나의 무지를 탄식하였다.
내 온 마음을 지혜에 기울였으며, 마침내 순결 속에서 지혜를 찾아내었다.


복음 마르코 11,27-33
그 무렵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또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에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누가 권한을 주어서 이런 일들을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나도 한 가지 물어 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지 말하겠다.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은 하늘에서 권한을 받아 한 것이냐? 사람에게서 받아 한 것이냐? 어디 대답해 보아라.” 하고 반문하시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하늘에서 받았다고 하면 어째서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고 할 터이니 사람에게서 받았다고 할까?” 하고 의논했으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이 무서워서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자기가 대머리란 사실을 속이고 여자를 사귄 남자가 있었습니다. 연애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사랑도 깊어졌고 이젠 비밀을 고백해도 이해해주리라 여겨서 애인에게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자기~~ 사실은 나 숨겨온 비밀이 있어.”

그러자 여자가 남자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자기 말할 필요 없어. 난 자기가 돈이 없어도, 대학을 안 나왔어도 괜찮아. 이미 우린 사랑하잖아. 난 자기가 대머리만 아니라면 어떤 단점도 다 이해할 수 있어.”

이 여인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어떤 것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남자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대머리’ 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조건을 걸고 있네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이 남자는 큰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 이 여인과 비슷하지 않나 싶네요. 즉, 우리는 스스로 상당히 자비스러운 척 합니다. 그러나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그 여인처럼, 내가 마음이 넓고 자비로워서 어떤 행동이든 다 받아들이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의 조건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고 있나요? 그리고는 말하지요. 이 정도의 조건도 채우지 못하면서, 왜 나를 탓하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그 조건을 과연 상대방의 입장에 맞추어서 생각한 것인지를 먼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조건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따지듯이 말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었나요? 아니지요. 오히려 놀라운 기적과 힘이 담긴 말씀으로 얼마나 큰 가르침을 전해주셨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지닌 권한을 밝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 권한을 밝히지 않으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식의 말을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커다란 사랑을 베풀고 있는 분은 예수님이신데, 사람들의 이러한 조건과 요구가 과연 말이 되는 것일까요?

이천년이 지난 지금 역시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종종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이기적인 모습들. 그러면서 내가 걸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면서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그런 조건 없이 내 이웃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조건 없이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도록 합시다.



모래시계(데일 카네기의「인생은 행동이다」 중에서)

당신의 일생을 모래시계에 담긴 모래라고 생각해 보세요. 모래시계는 갑자기 많은 모래를 통과시키려 들면 구멍은 막히게 되고 고장나고 말아요.

우리들 모두가 이 모래시계와 다를 바가 없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안으로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많다고, 그 일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하지 않고 한몫에 하려 들다가는 모래시계의 구멍처럼 우리들의 정신과 육체도 막혀버리고 마는 거예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일은 더 엉키고 더 늦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해결해 가는 인생의 여유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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