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5.27) - 연중 제8주간 금요일

2005. 5. 27. 오전 8:57:28

글자
2005년 5월 27일 연중 제8주간 금요일

제1독서 집회서 44,1.9-13
명성 높은 사람들과 우리의 역대 선조들을 칭송하자.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고,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이 없으니, 그 뒤를 이은 자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훌륭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의 업적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들의 자손들도, 그들이 남긴 훌륭한 업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의 자손들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키고 있으며, 그들을 이어서 그 후손들도 잘 지키고 있다. 그들의 후손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며, 그들의 영광은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 마르코 11,11-25
[예수께서 많은 사람에게 환호를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거기서 이것저것 모두 둘러보시고 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그래서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아로 가셨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시던 참에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나 하여 가까이 가 보셨으나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여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할 것이다.” 하고 저주하셨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 예수께서는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사고팔고 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며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또 물건들을 나르느라고 성전 뜰을 질러 다니는 것도 금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구나!” 하고 나무라셨다.
이 말씀을 듣고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를 없애 버리자고 모의하였다. 그들은 모든 군중이 예수의 가르치심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예수를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와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 예수의 일행은 그 무화과나무 곁을 지나다가 그 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어제는 신학교에 갔었습니다. 저의 영성조 신학생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신학교로 가서 신학생들을 태우고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어떤 학생 하나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신부님, 저는 말입니다. 신부님께서 부제 때 하신 강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래? 내가 어떤 강론을 했는데?”

“신부님께서는 그때 복음을 읽고는 한참을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힘들다, 지친다, 신학교를 그만두고 싶다…….’의 말씀을 하셨지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공개적인 강론 시간에 자신의 느낌들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때 신부님께서는 ‘이 글은 제가 신학교 2학년 때 썼던 영적일기였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들을 모두 웃겼지요. 저는 그때부터 다짐했습니다. 나도 이제부터 영적일기를 쓰자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영적일기를 빠짐없이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사람들의 인상에 확실히 남기는 강론을 위해, 저의 일기장을 인용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강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물론, 그때의 강론이 계기가 되어 영적일기를 쓰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게 되었지요. 사실 저는 제가 그런 강론을 했었다는 것을 기억도 하고 있지 못하거든요. 더군다나 제가 신학생 때 썼던 일기들은 모두 태웠고요…….

그런데 이렇게 저도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저에게 충격과 같았습니다. 즉, 지금은 잊어버린 저의 작은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이 몇 년 동안 계속해서 행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과 함께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나의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 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얼마나 책임을 지고 있는지요? “이건 내 삶이야”라면서 막 살겠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과연 그렇게 대충 대충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런 식으로 대충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누구보다도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기를 주님께서는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도 직접 그런 모범을 보여주셨고, 우리 역시 그렇게 살라고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이유때문이지요.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지요? 바로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며 상식이지요. 따라서 무화과 나무는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즉, 지금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저주하신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려는 예수님의 행위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 행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데 이 세상의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지 않고서는 그 무화과나무처럼 말라 버릴 수 있음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물론, 나의 구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의 모범이 됩시다.



메시아

헨델은 이탈리아풍의 오페라를 작고해 사교계에서 각광을 받았다. 또한 영국 국왕을 위해 작곡하면서 오폐라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다가 보치니라는 작곡가와 열띤 경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결국 헨델은 파산하고 병으로 쓰러져 재기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이런 실패 속에서 헨델은 종교 음악인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다. 비록 오페라에서는 실패했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를 찾아낸 것이다. 그는 자신처럼 실패하여 낙심한 살마들을 분발시키기 위해 곡을 썼다. 이 곡이 바로 그 유명한 '메시아'이다.

이 곳은 모두 연주하는 데 무려 2시간 이상 걸렸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영국의 국왕 조지 2세는 감격하여 일어나 들을 정도였다.

이 일이 유래가 되어 지금도 '메시아' 연주 중에서 '알렐루야 코러스'가 나올 때는 모든 관객이 서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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