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5.26) -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2005. 5. 26. 오전 8:14:07

글자
2005년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집회서 42,15-26
이제 나는 너에게 주님의 업적을 일깨워 주고, 내가 본 바를 말하겠다. 주님은 당신 말씀으로 그 업적을 이루셨고, 피조물은 그 뜻에 따른다. 만물이 찬란한 태양 빛을 받고 있듯이, 주님의 업적은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성인들도 그 오묘함을 헤아려 말할 능력을 받지 못하였다.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신기한 일들을 빈틈없이 배포하셔서, 온 세상을 당신의 영광 위에 굳게 서게 하셨다. 주님은 연못이나 사람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시며, 그 어떤 숨은 계획도 꿰뚫어 보신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으신 분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가지시고, 시대의 징조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과거를 밝혀 주시고 미래를 알려 주시며, 숨겨진 일들을 드러내 보이신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의 모든 생각을 다 아시니, 단 한 마디도 그분을 속일 수 없다.
주님은 당신 지혜의 놀라운 업적들을 질서 있게 배치하셨다. 그분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계시며, 그분에게는 아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고, 그분에게는 아무 조언도 필요하지 않다.
주님의 모든 업적은 사람에게 얼마나 바람직한 것이며, 사람 눈에 얼마나 찬란한가.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살아 남고, 그분이 필요할 때는 그 모두가 복종한다.
주님이 만드신 것으로 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서로 짝 지어 마주 있으며, 서로 도와서 훌륭하게 된다. 과연, 주님의 영광을 보고 권태를 느낄 자 누구인가.


복음 마르코 10,46-52
예수와 제자들이 예리고에 들렀다가 다시 길을 떠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앞 못 보는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예수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여러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그들이 소경을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하고 일러 주자 소경은 겉옷을 벗어 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예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 소경은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나섰다.





어제는 사제 모임이 있어서 인천의 어느 본당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모임 후, 식사를 맛있게 하고 그 신부님의 방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신부님께서 음악을 틀어주시는 거에요. 사실 그 방에 있는 음악시스템은 스피커도 엄청 큰 것이 무척 고가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음악에 관심이 있으시던 신부님들께서 소리를 듣더니만 이런 저런 좋은 평가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소리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더군요. 그냥 저의 귀에는 소리가 좋다면서 볼륨을 높이데 시끄러운 소음 정도로만 느껴지더군요. 그냥 컴퓨터로 들어도 소리의 차이를 잘 못 느끼겠던데, 비싼 장비를 통해서 음악을 크게 듣는 그 신부님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모든 음악을 컴퓨터를 통해서만 듣는 저의 경우와 음악을 좋아하시는 신부님의 차이는 이렇게 장비의 구비에 있어서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에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저의 경우는 컴퓨터에 관련된 장비에 관해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구입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음악 시스템에 관심 없는 제가 비싼 장비를 구입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컴퓨터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저의 모습을 보고서 잘 이해를 하지 못하겠지요. 이처럼 자신의 관심사에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 생활을 넘어서 주님께 대해서는 얼마나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주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노력들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되네요. 세상의 것에는 그렇게 무리를 하면서도, 정작 더 큰 무리를 해서라도 나아가야 할 주님한테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는 앞 못 보는 맹인, 바르티매오라는 신심 깊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신체적으로 눈이 멀었지만 마음의 눈은 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아 뵙고는 다른 사람이 말려도 굴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실 다른 사람들이 꾸짖을 정도로 이 바르티매오가 한 행동은 어쩌면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아도 굴하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주님께만 시선을 집중했기에, 그는 자신이 원하던 눈을 뜰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께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지요? 세상의 것에는 필사적으로 매달리면서 주님의 것에는 대충대충 해버리는 어리석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늘 묻습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런데 세상 것을 바라보다가 그런 질문조차 듣지 못해서 아무런 응답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르티매오처럼 주님께 철저히 매달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시기 위해서 매일 천사 한 사람씩을 보내주신답니다. 오늘의 천사가 누군지를 찾아봅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아시죠?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자...

1990년 2월 11일, 만델라의 석방 소식을 보도하기 위해 프리토리아 중앙 형무소를 찾은 국제 기자단은 그가 갇혀 있었던 독방 벽에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왜 하필 무하마드 알리의 사진을 붙여 놓으신 겁니까?"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만델라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그의 전력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날마다 하루 여덟 시간을 망치로 바위를 부수거나 차가운 바다 속으로 잠수해 해초를 따는 따위의 중노동으로 소비하고, 나머지 열여섯 시간은 한 평도 되지 않는 회색 콘크리트 독방에 갇혀 사는 생활을 무려 27년이나 계속해야 했던 만델라. 그가 날마다 온 힘을 쥐어짜면서 매달렸던 문제는 '죽음보다 못한 이 삶은 대체 언제쯤 끝나려나?'가 아니라, '이 가혹한 운명에게 벌의 독침같은 카운터펀치를 날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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