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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2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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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고린토 2서 6,1-10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자비를 베풀 만한 때에 네 말을 들어주었고,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가 하는 전도 사업이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과 궁핍과 역경도 잘 참아 냈고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잘 겪어 냈으며 심한 노동을 하고 잠을 못 자고 굶주리면서도 그 고통을 잘 견디어 냈습니다.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끈기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과 꾸밈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습니다. 두 손에는 정의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또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으며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오 5,38-42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마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라.”
5월 30일부터 6월 12일까지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2주간의 일정 안에서 많은 분들께서 도움을 주셨고, 그래서 2분의 신부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더욱 더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좋은 가이드의 역할과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주신 토마스, 에르멜린데 가정, 그리고 인스부룩에서 자신들의 학업까지 뒤로 제쳐두고 저희들과 함께 해 준 공부하는 신부님들과 신학생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네델란드와 오스트리아의 멋지고 화려한 교회를 보면서,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들을 바라보면서 사실 부럽다는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들 나라는 과거에 지어진 멋지고 화려한 교회의 건물 덕에 그리고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서 수많은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이에 반해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특히 제가 있는 갑곶성지는 더욱 더 초라해 보이더군요. 그러면서 한심한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네요.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순간. 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내 것이 가장 작아 보이고, 내 것이 가장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 우리나라 안에도 아름다운 경관은 얼마나 많습니까? 사계절의 뚜렷함,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미를 통해서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자연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멋집니까? 무뚝뚝하기는 하지만 한번 친해지면 밤을 새워 술잔을 기울이면서 함께할 수 있는 정(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음식 맛도 빼놓을 수 없는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 역시 멋진 면이 많지요. 유럽의 멋진 성당들. 그 성당들의 사용 용도는 지금 단순히 관광의 차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즉, 관광객들이 찾아와서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안에 신앙이 있을까요?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에 반해서 우리 교회는 비록 멋지고 화려한 건물은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 말씀을 듣고,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남을 부러워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받은 은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그 은총을 한층 더 발전시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를 통해 사도 바오로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생각해보십시오. 혹시 남이 받은 은총만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이 받은 은총을 헛되이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하느님의 은총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은총을 소홀히 함으로써 하느님께도 소홀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내가 받은 하느님의 은총 리스트를 만들어 봅시다.
1006개의 동전("TV동화 행복한 세상"중에서) 가파른 달동네 언덕 끝, 그 집엔 가난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인 내가 그 누추한 문을 두드렸을 때 집에서 나온 주인은 화상으로 얼굴이 반쯤 일그러진 여자였습니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두평이나 될까. 퀘퀘하고 비좁은 방에는 그녀와 어린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났어요. 아버지와 저만 겨우 살아남았죠."
불이 난 후에 상처투성이가 된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냈고 걸핏하면 손찌검을 해댔다고 합니다.
"으아앙..."
절망에 빠진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껴안은 건 앞 못보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아주 짧게 그녀를 스쳐갔습니다.
남편마저 세상을 뜨고 생계가 막막해진 판에 화상 입은 얼굴로 할 수 있는 거라곤 구걸뿐이었씁니다.
서러운 사람... 상담을 하는 동안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생활보조금이 나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씁니다.
그것은 뜻밖에도 동전이 가득 든 주머니였습니다.
"혼자 약속한 게 있어요. 구걸해서 천 원짜리가 나오면 생활비로 쓰고 500원짜리는 시력을 잃어가는 딸아이 수술비로 쓰기로. 100원짜리가 나오면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쓰겠다구요... 좋은 데 써 주세요."
그돈을 받아 줘야 마음이 편하다는 말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동전꾸러미를 받아들고 돌아왔습니다.
주머니 안에는 모두 1006개의 100원짜리 주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1006개의 때묻은 동전. 그것은 부자의 억만금보다 더 귀한 돈이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