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6.11) -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005. 6. 11. 오전 8:04:53

글자
2005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제1독서 사도행전 11,21ㄴ-26; 13,1-3
그 무렵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보냈다. 바르나바는 가서 그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격려하였다. 바르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 나오게 되었다.
그 뒤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아 다르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리고 왔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때부터 안티오키아에 있는 신도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때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와 교사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와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과 키레네 사람 루기오와 영주 헤로데와 함께 자라난 마나엔과 사울이었다.
그들이 단식을 하며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기로 정해 놓은 일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나서 그들에게 안수를 해 주고 떠나보냈다.


복음 마태오 10,7-13
그때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 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어떤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고장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그 집에 들어갈 때에는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릴 만하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화는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이 글은 2003년 6월 11일 새벽을 열며 묵상 글입니다.

오늘은 내용이 약간 길기는 하지만 깊은 여운을 주는 이야기로 시작해보렵니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레오폴드 고도프스키에겐 절친한 친구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이 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의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그만 오른팔을 잃는 아픔을 겪었지요. 피아니스트에게 팔 하나를 잃는다는 것... 아마 엄청난 절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은 피아니스트로서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고도프스키는 친구를 위해서 뭔가를 꼭 해주고 싶었지요.

‘비록 오른손은 없을지라도 왼손만을 위한 협주곡이 완성된다면..?’

그는 하루빨리 곡을 만들어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연주 일정이 바빴던 그는 곧바로 작곡할 수가 없었지요.

어느 날 연주를 마친 고도프스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절망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는 그날로 연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와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왼손을 위한 협주곡’이 완성되었고, 그는 악보를 손에 들고 숨을 헐떡이며 친구에게 달려갔지요.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던 친구는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곡을 연주했답니다.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웠지요. 그리고 이 곡으로 인해 얼마 후 비트겐슈타인은 팔을 잃기 전처럼 다시 유명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곡이 머지않아 고도프스키 자신을 위한 협주곡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연주여행으로 세계를 돌던 고도프스키가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후유증으로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친구를 절망에서 구하고자 했던 따뜻한 마음은 결국 자신을 절망에서 구하는 희망의 불빛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던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말씀처럼 살기를 힘들어합니다.

‘거저 받았다니!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얻은 것인데...’

이런 아쉬움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놓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베푼 행동 하나 하나가 다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앞서 고도프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로 교감을 나누는, 서로에게 마음의 벗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습이 변해도, 상황이 변해도, 세상이 변하더라도, 늘 한결같은 우리들이 된다면 이 세상은 우리 모두가 행복한 미소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합시다.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과도 같습니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때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 라고....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합니다.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니까요.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든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가던 길이 밝고 환한 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