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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童子)에게 물으니
이 시를 지은 가도(賈島: 779~843)는중국 중당(中唐) 때의 시인입니다.
오늘의 이 시를 지은 시인은 날을 정해서 스승님을 찾으러 먼 길을 떠났습니다. 과거 자신의 수행을 지도하던 그런 스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부푼 기대를 가지고 길을 나섰겠지요. 지금같이 아무 때나 연락을 주고 받을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을 때입니다.
삶의 박자는 지금보다 더 느렸겠지만 여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뿐 숨을 몰아쉽니다. 스승을 얼른 뵈려는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마침내 스승이 머물고 계신 산 중 초막에 도착합니다. 싸리대문을 너머로 살며시 미소를 짓고 말합니다.
스승님의 허름한 초옥(草屋)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습니다. 집 밖을 이리저리 둘러봅니다.마침 담장 옆 아름드리 소나무 밑에 서 있는 동자를 발견합니다. 묻습니다. 스승님이 어디가셨냐고․․․.
시인은 고개를 들어 깊고 깊은 산봉우리를 주욱 훑어봅니다. 간밤에 비가 내려 온갖 초목들이 푸르뎅뎅 물기를 머금은 산야엔 아직도 짙은 안개가 걷히지 않고 산중을 온통 둘러싸고만 있습니다. 이 시(詩)는 동양화에서 수묵화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스승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스승님을 만나뵈러 온 시인의 목적은 실패했단 말인가요? 여기에 또한 노디를 놓기 위해 한가지 일화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영성지도자이자 예수회 사제인 헨리 나웬 신부(Fr Henry Nowen)는 자신이 쓴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에서 이런 일화를 인용합니다. 어느날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괴로와하는 사제와의 상담을 원하는 여인이 본당 사무실을 들렀습니다. 그때 사무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장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실망하고 돌아갔을까요? 헨리 나웬 신부는 그렇지 않다고 썼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은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곤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성당을 나섰다고 합니다. “아! 그래, 맞아! 우리 신부님은 기도하시는 분이시니까. 나를 비롯한 우리 모든 본당 식구들을 위해서도 지금 기도를 바치시겠지. 신부님의 기도를 생각하고 힘을 내자.” 여인은 사제를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제의 부재(不在)를 통하여 오히려 신자들을 기도와 사랑으로 보살피는 자상한 사제의 모습을 더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당장 직접 만나지 못해도 때론 큰 스승의 「부재」(不在, absence)는 더 큰 「현존」(現存, presence)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한시에서 시인 무본가도가 전하고자 하는 무언의 메시지도 이와 동일한 것이 아닐까요! 비록 제자는 원하는 시간에 스승을 뵙지 못했어도 둘 사이에는 무언의 교감(交感)이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스승 안에 들어있는 파아란 하늘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