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原罪) ..

2005. 12. 27. 오전 7: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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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인 차이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강조는 인간의 하느님께로부터의 극단적인 분리에 대한 코츠커의 각성에서 그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관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기인하는 차이점이다. 키르케고르의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인 차이에 대한 강조 속에는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다. 심지어 인간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다. 이것이 은혜요, 기독교의 기본적인 핵심이다. 아우구스부르크 신조(1530) 제4항은, 오직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혜로 의로운 자가 됨으로써 인간은 구원받는다고 못박아, 도덕적인 행실로 의로운 자가 된다는 생각을 아예 처음부터 거부하였다. 바울로의 가르침( 로마서 3:4)이 16세기의 권위 있는 규범으로 등장하였다. 모세 법과의 절연을 바탕으로 삼아 성립된 이 교리는 선행과, 법을 주신 하느님께의 복종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아 자랑으로 여기는 유다교의 중심 교리와 날카롭게 대립된다. 이론상으로, 키르케고르는 그 교리를 반대하였다. 참된 헌신은 인간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아무런 수단도 갖추지 못한 자신을 볼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이것이 개신교 경건주의의 목소리이다. 반면에 유다교 경건주의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길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생각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다교는 인간의 영혼이 저주 밑에 묶여 있거나 상속된 범죄의 올가미에 갇혀 있어 거기에서 구원받아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인간의 타락과 원죄에 관한 교리들은 유다교 안에 뿌리박은 교리가 된 적이 없었다. 1세기 묵시 문학에서 한 책에 그런 교리가 나타났지만 다른 책에서 부인되었다. 아담의 죄와 에덴에서의 추방은 몇 세기 동안 유다인들의 사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그러나 모든 권위 있는 인물들이 한결같이 그런 사건들이 맨 처음 하느님께서 만드신 인간에게 영향을 끼쳐 다른 존재가 되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의 행위가, 그것이 제아무리 거창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것을 변경시키거나 일그러지게 하지는 못한다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유다 민족이 천여 년 동안 사용한 대중 언어인 이디쉬 어에 "원죄"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이 상당한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뜻을 나타내는 히브리 말이 출현한 것도 13세기에 이르러 중세기의 기독교-유다교 논쟁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매일 기도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께서 제게 주신 영혼은 깨끗합니다." 각 개인이 저지른 죄는 그의 영혼을 더럽힌다. "너희는 들어 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리라"(신명기 28:6)는 말씀은 "너희의 세상으로부터의 떠남이 세상으로 들어감과 같으리라, 죄 없이 세상에 들어 왔듯이 죄 없이 세상을 떠나리라"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키르케고르는 죄의 문제를 종교적인 인생관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 기독교적인 심성을 지니는 출발점으로 보았다. 특별히 [불안의 개념]과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그는 죄의식이야말로 주관적인 자아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자각이라고 주장하였다. 유다교의 인생관에서도 죄에 대한 깊은 인식을 하고 있긴 하지만 초점은 구체적으로 파악되는 죄, 인격적인 창조주의 뜻에 반하여 저지르는 인격적인 행동으로서의 죄에 쏠려 있다. 그리고 비록 죄가 크고 많아도 악한 행동이라는 게 치유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각 개인의 본성 안에 자리잡은 근절 못할 죄악성에 대한 기독교인의 고정 관념은 유다인의 마음에는 도대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강한 악의 충동이 있을 수 있지만 또한 그에 맞서 선한 충동도 있다. "내 죄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잘못 항상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시편 51:3)라고 고백한 시인이 "내 영혼아, 야훼를 찬미하여라…네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네 모든 병을 고쳐주셨다"(103:2,3)라고 노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죄와 용서 사이에는 변증법적인 관계가 있다. 인간이 자기 죄에 대하여 민감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용서하심은 더욱 은혜로운 것이다. 코츠커에 따르면, 도약은 하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 영혼의 응답이다. 이것은 그런 부르심에 인간이 대답할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만일 인간의 영혼이 그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무한한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기-성찰은 자신의 무지(無知)를 발견하게 한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자기-반성은 자신의 죄인임을 발견하게 한다. 코츠커가 부르짖은 자기-훈련은 자신의 거짓됨, 진실하지 못함, 마음의 불결함을 마주보게 한다. 토라는 천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탈무드]는 말하고 있다. 사람은 천사처럼 살게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불가능한 일을 하도록 요구받고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깨달음이 그가 "감추어진 내면성"이라고 부르는 긴장된 의식의 핵심이다. 하느님의 지상 명령인 복종인, 인간이 그 명령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없으므로 하여 범죄 또는 죄악으로 경험된다. 그는 하느님의 압도하는 명령을 다 따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생명을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하느님의 손에 내어맡기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부추김받아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인간이 하느님 눈에 괜찮은 존재로 보일 만한 공적으로 쌓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공적을 쌓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소극적인 길이고 하나는 적극적인 길이다. 교회의 교부들은 전자를 말하고 라삐들은 후자를 말한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로마서 3:28) 때문에 금지된 것을 피하는 것만으로 공적을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유다인은 적극적인 공적을 쌓는 법을 배웠다. 남자와 여자는 적극적인 행실을 함으로써 그런 높이에 오를 수 있어… 하느님 앞에서 괜찮은 존재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공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였다. 그러므로 사랑의 행실을 다 한 자라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네"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다. 이 점에 있어 키르케고르는 루터를 따른다. 코츠커도 인간의 결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의 불완전한 행위 속에조차 거룩함이 깃들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이 "불결한 중에"(레위기 16:16 참조) 있을 때 그들과 함께 있겠노라고 하신 하느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다. 다만 저속한 자들이 공적쌓는 것을 약속 어음처럼 생각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능력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이 유다교에서는 공적의 교리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이 둘을 다 경험해 본 코츠커는, 필요한 것은 자기-만족의 감정이 아니라 불안감임을 알고 있었다. "하느님께 거역함으로써 우리는 항상 그릇되다"는 키르케고르의 유명한 주장은 "이 종을 재판에 붙이지 말아 주소서. 살아 있는 사람 치고 당신 앞에서 무죄한 자 없사옵니다"라는 시편의 한 구절(143:2)을 풀어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이 하느님과 이러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이 사실이라고 하여 그렇다고 다른 백성에게 내릴 수도 있는 하느님의 부정의(否正義)에 대한 더 높은 최고의 재판을 언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범죄에 대하여 몰두한 덕분에 키르케고르는 신성(神性)의 문제로, 악을 존재하게 한 하느님을 변명할 필요성에 관한 문제로 괴로워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코츠커는 신앙의 사람이면서 그만큼 정신의 사람이었다. 그는 깊이 믿으면서도 질문을 계속하였다. 패배당하면서도 계속 항변하였다. 물론 아담의 원죄에 기인한 죄의식으로 괴로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코츠커는 더 극단적인 고뇌로 시달림받았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의 교활한 기만성에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었다. 말년에 그의 영혼을 어두운 슬픔 속에 가두어버린 것은, 이 역설적인 하느님의 책임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코츠커의 순결에 대한 요구는 인간의 본성이 타락되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인간의 모든 행위와 생각이 원죄로 더럽혀져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그런 해석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그의 요구가 그토록 철저했던 것은, 그가 인간의 순결함과 숭고함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었던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의 한 부분으로서 위에서 내려온" 것이라는 하시드 파 스승들의 견해에 동조했던 듯하다. 그의 모든 사상은 분명히 인간의 능력에 대한 확신 위에 기초하였다. 그는 실제로 인간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였다. 그는 인간이 영혼의 위대성이라고 불리는 것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였다. 키르케고르의 책은, 그의 일기나 직접 간접으로 사람들과 나눈 편지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원죄와, 죄에서 파생되는 삶의 공포들을 상대로 필사적인 투쟁을 철저하게 벌인 인간의 좌절을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코츠커와 키르케고르가 서로 상당히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만은 끝까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음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코츠커를 당황하게 한 것은 타락한 인간이 아니라 '땅 속에 묻힌 진실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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