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이 식은 사람들(교본 481-485면)
믿음이 식은 사람들이 냉담자들이고 잃은 양들이다. 레지오의 활동 분야 가운데 냉담자 회두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교우 돌봄 활동을 하는 데 막 영세한 신자들을 돌보는 것은 쉬운 편이지만 냉담자를 돌보는 것은 어려운 활동이다. 왜냐하면 영세자들은 신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수계 신자'이지만 냉담자들은 교회를 멀리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3년 이상 판공성사를 보지 않으면 냉담자로 분류되는데, 교회마다 잃은 양들이 수두룩하다. 해마다 잃은 양 증가율은 영세자 증가율의 몇 배나 된다. 교회가 양적으로 신자수를 많이 불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성 신자들을 잃지 않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가정방문을 해보면 교적에 오른 신자의 절반 가량이 냉담자, 타지역 거주자, 행방불명자들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절반 모두가 수계 신자는 아니다. 주일 미사 참례자 수를 보면 수계 신자수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비록 냉담자는 아닐지라도 쉬고 있는 신자들이다.
왜 이들은 쉬거나 냉담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믿음의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아 세속 정신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거나 일단 세례만 받으면 교회가 관심을 적게 가지기 때문이다. 또는 성직자나 수도자, 신자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거나 실망스런 일을 겪은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독특한 성격이나 사목 방침으로 신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어느 레지오 간부가 냉담자 회두활동을 하여 성공한 사례를 옮겨본다.
"주회에서 단장의 활동 지시를 받고 짝과 같이 활동 대상자인 시각 장애인 부부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본래 신앙심이 깊다고 자처하는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본당 신부님의 사목 방침의 조그만 실수로, 자기들에게 편파적이고 차별 대우를 한다고 오해하여 냉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우리가 찾아가면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기 때문에 도대체 활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몇 주를 방문하다가 포기할까도 했지만 단장님의 꾸준한 방문 권유로 상대편의 태도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무려 14개월이나 끈질기게 방문했습니다. 그 결과 차츰 응어리가 풀어지면서 우리를 만나 주었습니다.
물론 처음 만나자마자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장애인으로서 받는 멸시감과 본당신부님께 대한 원망과 분노의 화풀이와 푸념을 끊임없이 들었으며, 심지어 하느님을 원망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인내심은 모든 것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돌과 같이 굳었던 그들의 마음을 사랑과 용서로 돌렸습니다. 14개월 만에 고해성사를 본 그들은 본당 신부님과 화해하고 하느님 품 안에서 열심한 신자로 변했습니다"(「레지오 마리애」 136호, 77면).
믿음이 식은 냉담자를 회두시키려면 영웅적인 끈기와 인내가 요구되며, 반드시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를 보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를 하면 다시 세례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냉담자 회두는 본당의 성직자와 수도자들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쁘레시디움 단장이 주회 때마다 냉담자 회두활동을 단원들에게 배당하여 활동보고를 꾸준히 받는다면 수계 신자수와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괄목할 정도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