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한 순교자들의 위엄-이기양 신부님

2006. 12. 2. 오전 1:33:09

글자

<11월 24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한 순교자들의 위엄

 

   베트남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우리나라보다 250여년 앞선 1533년경 중국으로 가던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후 선교 사업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615년에 예수회가 이곳에서 정식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활기를 띄었고, ‘베트남의 사도’로도 불리는 예수회의 로드(Alexandre de Rhodes) 신부는 1624년 성탄절에 이곳에 도착하여 1645년까지 수만 명의 베트남인들에게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1659년에 두 개의 대목구가 설립되었고, 1666년에는 최초의 신학교가 세워졌으며, 2년 뒤인 1668년에는 두 명의 베트남인이 사제로 수품됩니다. 그리고  1670년에는 최초의 베트남 여자 수도회인 ‘십자가 찬미자’수도회가 창설되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또 같은 해에 처음으로 개최된 통킹 사목 회의와 이어 1672년에 개최된 코친차이나 교회 회의에서 선교회를 재조직함으로써 프랑스 선교사들과 포르투갈 선교사들 간의 갈등을 해소시켰습니다.

   1698년까지 베트남에서는 산발적으로 혹독한 교회 박해가 있었습니다. 18세기에 들어서도 세 번의 박해가 있었는데 이 핍박들은 1787년에 대목구장 베엔이 베트남의 왕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구엔안과 프랑스 사이의 ‘베르사유의 협정’을 체결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중단되었습니다. 프랑스 군사력의 도움을 받아 1806년에 왕이 된 구엔안은 그 대가로 교회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았으나, 민망 왕과 투둑 왕 때 박해가 더욱 잔인해지자 프랑스는 이를 막기 위해 1862년에 베트남을 침략했고, 1883년에 베트남을 식민지화함으로써 50년간의 박해를 종식시켰습니다.
   이때까지 박해를 통해 13만 명 이상이 순교하였고, 이들 중 117명이 1988년 6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베트남의 순교자들로서 시성되었습니다. 시성된 이들 중에는 96명의 베트남인과 에스파냐 출신의 수도회 소속 선교사 11명 그리고 10명의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분별로 보면 8명의 에스파냐와 프랑스 출신 주교들과 50명의 사제들(13명의 유럽 출신과 37명의 베트남 출신) 그리고 59명의 평신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처형된 사제 성 안드레아 둥락(Andreas Dung-Lac)은 1785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례를 받고 사제가 되어 여러 지역에서 선교와 사목활동을 하던 교구 신부였습니다. 성인의 원래 이름은 둥안트란이었고, 12살 때 가족 모두가 하노이로 옮겨가 살았습니다. 하노이에서 가톨릭 선교사를 만난 것을 계기로 둥안트란은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됩니다. 안드레아로 세례를 받고 처음에는 교리교사로 일하다가, 신학을 공부하고 1823년 사제로 서품된 것입니다.
   케담의 본당신부가 된 성인은 열심히 선교를 하고 사목하였으나, 1835년 박해령에 구속되고 말지요. 얼마 후 본당 신자들이 암암리에 마련한 보석금으로 풀려나지만 이전처럼 공공연히 사목을 할 수가 없어서 이름을 둥락으로 개명(改名)하고 숨어 다니면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성인은 1839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재차 구속되어 심한 고문을 받다가 하노이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신자들과 함께 참혹한 박해 중에도 주님을 굳게 믿고 따르다가 1839년 12월 21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그 후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8년 6월 1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을 시성하면서 그들의 축일을 11월 24일에 기념하도록 보편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러한 순교자들의 피는 베트남 그리스도교 신앙의 씨앗이 되었고, 그 씨앗은 지금 전 인구의 7.9%인 566만 5000명의 신자로 열매 맺었습니다.(1995년 통계)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가 그랬고, 베트남 및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박해는 신앙의 씨앗이요 은총의 보고였습니다. 오늘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고통을 뛰어넘은 성인들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새겨듣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시련이라면 우리 또한 기쁘게 받아들여 성숙과 은총의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순교자 중의 한 명인 성 바울로 레바오틴이 감옥에서 쓴 편지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묶여 있는 나 바울로가 날마다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알림은 여러분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나와 함께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분의 자비는 영원하십니다.
   이 감옥은 영원한 지옥에 비길만하니 족쇄, 쇠사슬, 포승 등 온갖 종류의 잔인한 형벌과 더불어 미움, 복수, 비방, 폭언, 불평, 악행, 거짓 맹세, 저주와 궁핍과 근심 등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옛적에 세 소년을 불가마에서 구원하신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면서 나를 이 고난에서 구하시고 이 고난을 달게 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 분의 자비는 영원하십니다.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러한 형벌 가운데서도 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기쁨과 즐거움에 넘쳐 있으니,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그분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전적으로 지시고 나에게는 겨우 한쪽 끝 부분만 지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나의 싸움을 구경만 하시지 않고 친히 싸우시고 승리하시며 모든 번민을 이기십니다. 그 까닭으로 그분은 머리에 승리의 관을 쓰셨으며 그분의 지체들은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케루빔과 세라핌 위에 앉아 계시는 주님, 황제와 그 관리와 신하들이 날마다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모독하는 광경을 보면서 제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보십시오. 주님의 십자가는 이방인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이 모든 것을 보면서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 차라리 사지가 찢겨 죽어서 그 사랑을 증거 하기를 열망합니다.
   주님, 주님의 권능을 보여 주시고 저를 구원하시며 붙들어 주시어 제 연약함 안에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주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행여나 제가 고난의 도정에서 비틀거려 원수들이 거만하게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성 바울로 레바오틴이 1843년에 케빈 신학교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Launay,: Le clerge tonkinois et ses pretres martyrs, MEP. Paris 1925, pp. 8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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