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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2006.11.24금
| 루카 복음 19장 45-48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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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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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치겠습니다 장재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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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를 보면 배에는 쓰라리지만, 입에는 꿀같이 단 작은 두루마리를 삼킨 사도 요한에게 세상을 향한 예언의 소명이 주어집니다. 사도 요한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책을 먹은 일은 에제키엘(에제 2,8-3,3 참조)과 예레미아(예레 15,16 참조)도 경험한 바 있지요. 하느님께 사로잡혀 세상의 반대 받는 표적이 되었던 그분들은 예수님처럼 고난당하고 외면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은 이미 예수님을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입에서 꿀같이 달았지만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예레 15,18)라는 하소연처럼 삶을 쓰라리게 하기도 합니다. 어둡고 악한 세상을 향한 예언의 소명은 이렇게 아프고 쓰디 쓴 고통의 연속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내 귀가 듣고 내 영혼으로 묵상할 때는 달디 단 그 말씀이 복음의 뜻대로 실천하려 하면 쓰라리기 이를 데 없이 힘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천사도 그 사실이 안쓰러운지, 입에서 달다는 말보다 먼저 “배를 쓰리게 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당해야 할 각오를 단단히 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달디 단 그 말씀을 세상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이 쓰라리고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은 세상이 쓴 것을 절대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기도하는 하느님의 집이 강도의 소굴로 변해버린 일에 울분을 토하시는 예수님의 곁에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곁을 떠나지 않는 온 백성이 있었습니다. 내 속이 쓰라려도, 하느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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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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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우리 삶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은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말이 있듯, 지금 겪는 어려움은 피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나 주위 사람의 지나온 삶을 찬찬히 살펴보세요. 힘들다고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 직장을 옮기거나 삶터를 떠나 시골로 간 사람 가운데 후회하거나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대로 참 힘들겠구나 하고 안쓰러워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편안하고 웃음 띤 얼굴로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될 때도 적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넘어서는 연습을 해보세요. … 힘들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세요. 이 어려움은 자신에게 더 큰 기쁨과 평안함을 주기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려움에 직면해서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나보다 남을 먼저 위하는 길을 선택해보세요. 함께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으면 먼저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보세요. 나쁜 일을 하는 사람까지 도우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올바른 길에 들어서도록 날선 비판과 책임을 묻는 것도 그를 위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그 사람이 올바른 길에 들어서서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내게 복이 돌아온다더라 하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을 즐기세요. 그렇게 나보다 다른 이가 먼저 어려움을 넘어서서 행복해지도록 돕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행복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신비하게도 자신이 어느 순간 어려움의 바다를 건너 평화의 땅을 딛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어려움이 풀리기도 하고 새로운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권복기 | <한겨레신문> 2006년 8월 30일자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