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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 -이회진신부- 인도의 옛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 밑에 아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서로를 잘 이해해 주었고, 서로 서로를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그 마을에는 싸움도 없었고, 다툼도 없었죠. 그들은 모두 신의 뜻에 의해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악마가 이것을 보고 하느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악마는 하느님에게 “신이시여, 저 사람들이 항상 행복하리라 봅니까?” 그러자 하느님이 “그들은 언제나 행복할 것이다.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악마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에 심통이 나서 “좋아요. 나하고 내기합시다. 나는 저 마을 사람들을 아귀다툼하는 인간들로 만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악마가 끈질기게 졸라대기도 했고, 사람들을 믿었기에 그럼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악마는 세 번의 기회를 얻어 사람들을 유혹하러 지상에 내려 왔습니다. 악마가 지상에 내려와 행복한 마을의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들을 아귀다툼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을까하며 살펴보다가 한 가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랑의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바로 보면서 서로가 그렇게 이해해 주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악마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빼앗아 히말라야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마을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매일 바로 보던 사랑의 힘이 없어졌기에 불안과 초조가 엄습했죠. 그래서 마을의 원로들은 특공대를 조직하여 그 “사랑의 마음”을 찾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히말라야의 눈보라를 헤치고, 어떤 어려움도 다 물리치고는 그 “사랑의 마음”을 찾아왔죠. 악마는 마을 사람들이 “사랑의 마음”을 찾아가자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빼앗아 태평양 바다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특공대를 조직하여 오랜 고난과 시련 끝에 결국 이것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하느님은 흡족해 하셨습니다. 악마는 고민에 빠졌고, 어떻게 하면 인간을 고통 속에 살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그러다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그 사랑의 마음을 산산이 부수어서 한 조각씩 사람들의 마음에 넣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사랑의 마음을 조각내 행복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한 조각씩 넣어주자 마을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공대를 만들어 세상 곳곳에 다 보내봐도 사랑의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그것이 한 조각 한 조각씩 들어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사랑의 마음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훔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마침내 살인을 해서라고 차지하려고 했죠. 히말라야의 행복한 마을은 이제 악마가 원하던 데로 아귀지옥이 되어버렸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불행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길은 “하느님의 뜻, 바로 구원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평화의 길은 “함께 사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하느님이 각자에게 보내준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 모든 것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함께 사는 길”이 흔히 가장 크게 위협 받는 것은 사람의 이기심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누구나 행복하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 사랑과 행복을 “함께 모색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의 길”로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주님, 저희를 평화의 길로 나서게 이끌어 주소서. 아멘” |
[강론] 평화의 길[이회진 신부님]
2006. 12. 2. 오전 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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